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758
한자 安東 權氏
영어공식명칭 Andong Kwo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석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안동 -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집성지 여물리 -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여물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권행(權幸)
입향 시조 권회(券恢)

[정의]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회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상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안동 권씨(安東 權氏) 시조는 고려의 개국 공신인 권행(權幸)이다. 권행은 930년(태조 13) 태조 왕건(王建)을 보필하여 고창군(高昌郡)[현 경상북도 안동시] 병산에서 견훤의 후백제군을 크게 무찌를 때 공을 세웠다. 이후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키고 권행에게 식읍(食邑)으로 하사함과 동시에 권(權)씨 성을 내렸다고 한다.

권행 이후 안동 권씨 세계(世系)는 권인행(權仁幸), 권책(權冊), 권균한(權均漢), 권자팽(權子彭), 권선개(權先蓋), 권염(權廉), 권이여(權利輿)로 이어지면서 대대로 안동 지역의 호장을 지내다가 권이여의 아들인 권중시(權仲時)·권취의(權就宜)·권통(權通) 대에 가계가 분화되기 시작하였다.

고려 후기 안동 권씨는 30여 명의 관료를 배출하면서 권문가로 성장하였다. 이를 주도한 가계는 권중시의 후손들이다. 권중시의 아들 권수평(權守平)·권차평(權次平)·권성원(權性源)·권수홍(權守洪) 중 권수평과 권수홍의 가계가 관료를 배출하면서 사족 가문이 되었고, 권차평과 권성원의 가계는 안동의 향리 가문으로 남아 있었다. 권수평은 고려 고종 때 추밀원부사를 지냈고, 권수평의 아들 권위(權韙)는 한림학사를 지냈으며, 손자 권단(權㫜)은 충렬왕 때에 찬성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권단의 아들 권부(權溥)가 충숙왕 때 수상인 첨의정승에 오름으로써 가세를 더욱 신장시킬 수 있었다. 이후에도 고려 말까지 20여 명의 고위 관료를 배출하면서 고려 후기 명문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였다. 권수홍의 가계도 아들 권자여(權子輿)가 검교대호군이 되고 권책(權頉), 권한공(權漢功), 권중달(權仲達), 권중화(權仲和)로 이어지면서 고위 관료를 배출하였다. 안동 권씨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문과 합격자를 400명 가까이 배출할 정도로 명문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였다.

상주 지역의 안동 권씨는 서천군수를 역임한 권회(權恢)가 안동에서 함창현 이안 지역에 입향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또한 권근(權近)의 후손인 용궁현감 권긍(權肯)이 외가가 있는 용궁 무리실에 살다가 함창 공검으로 입향하여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입향 경위]

조선 전기인 1400년대 중엽 권회가 안동에서 함창현 이안 지역으로 이주하여 안동 권씨 상주 입향조가 되었으나 정확한 입향 경위는 알 수 없다.

[현황]

상주 지역의 안동 권씨 주요 세거지는 이안면 여물리이며, 2015년 현재 상주 지역에 거주하는 안동 권씨는 총 2,044명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상주 지역 안동 권씨 관련 유적으로는 이안면 여물리인천 채씨(仁川 蔡氏) 문중과 함께 건립하여 강학을 하였던 주암서당(周巖書堂) 터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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