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801 |
---|---|
한자 | 權相一 |
영어공식명칭 | Kwon Sangil |
이칭/별칭 | 태중(台仲),청대(淸臺),희정(僖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679년 - 권상일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710년 - 권상일 증광시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720년 - 권상일 예조정랑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722년 - 권상일 병조좌랑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727년 - 권상일 만경현령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732년 - 권상일 도산서원 원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733년 - 권상일 『퇴계언행록』 간행 |
활동 시기/일시 | 1734년 - 권상일 울산부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738년 - 권상일 사직 후 귀향 |
활동 시기/일시 | 1745년 - 권상일 봉상시정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747년 - 권상일 동부승지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748년 - 권상일 좌부승지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754년 - 권상일 병조참판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759년 - 권상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83년 - 권상일 죽림정사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786년 - 권상일 근암서원 이향 및 추향 |
추모 시기/일시 | 1790년 - 권상일 희정(僖靖) 시호를 하사받음 |
출생지 | 상주목 산양현 근암리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
거주|이주지 | 상주목 산양현 근암리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
수학지 | 상주목 산양현 근암리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
부임|활동지 | 만경현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
부임|활동지 | 울산부 - 울산광역시 |
부임|활동지 | 도산서원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부임|활동지 | 도남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도남동 |
묘소|단소 | 권상일 묘소 -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과곡리 |
사당|배향지 | 죽림정사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
사당|배향지 | 근암서원 - 경상븍도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안동(安東) |
대표 관직 | 병조참판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문신.
[가계]
권상일(權相一)[1679~1759]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태중(台仲), 호는 청대(淸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구(權坵)이고, 할아버지는 권이칭(權以偁)이다. 아버지는 권심(權深)이고, 어머니는 부사 이달의(李達意)의 딸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김가주(金可柱)의 딸 선성 김씨(宣城 金氏), 두 번째 부인은 이만영(李萬英)의 딸 여흥 이씨(驪興 李氏), 세 번째 부인은 통덕랑 이유지(李柔之)의 딸 진성 이씨(眞城 李氏)이다. 아들은 권욱(權煜)이다.
[활동 사항]
권상일은 1679년(숙종 5) 상주목 산양현 근암리(近菴里)[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에서 태어났다. 1710년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이후 저작·전적·직강 등을 거쳐 1720년 예조좌랑이 되었고, 1722년에는 병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727년(영조 3) 만경현령으로 부임하였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사전에 탐지하여 보고하고 토벌에 공을 세웠다. 1731년 영암군수에 이어 사헌부장령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732년 도산서원(陶山書院)의 원장을 역임하였다. 1733년에도 양산군수와 군자감정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퇴계언행록(退溪言行錄)』을 교열하여 간행하였다.
권상일은 1734년 사헌부장령을 역임하였고, 1735년 울산부사로 부임한 뒤에는 구강서원(鷗江書院)의 동재·서재를 건립하여 학문을 진흥시켰다. 1738년 사직한 뒤 낙향하였고, 1741년 시강원필선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745년 봉상시정에 임명되어 다시 관직에 복귀하였고, 1746년 사간원헌납·성균관사성·사헌부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1747년 동부승지와 형조참의에 임명되었고, 1748년 좌부승지를 역임한 뒤 벼슬에서 물러났다.
권상일은 사직하고 낙향한 뒤 상주 임호서원과 도남서원에서 『소학』을 강론하였으며, 1749년 이조참의·대사간 홍문관부제학·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1754년 병조참판을 역임하였으며, 1758년에 기로소에 들어간 뒤 이듬해인 1759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권상일의 저술로는 문집인 『청대집(淸臺集)』 18권을 비롯하여 『초학지남(初學指南)』·『관서근사록집해(觀書近思錄集解)』·『소대비고(昭代備考)』·『가범(家範)』·『역대사초상목(歷代史抄常目)』 등이 있다.
[묘소]
권상일의 묘소는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과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권상일은 1783년(정조 7) 죽림정사(竹林精舍)[죽림서당]에 위패를 봉안하였다가 1786년 근암서원(近嵒書院)으로 이안(移安)하였고, 1790년 희정(僖靖)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