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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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聃壽 |
영어공식명칭 | Kim Damsoo |
이칭/별칭 | 태수(台叟),서계(西溪),황계처사(黃溪處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535년 - 김담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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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64년 - 김담수 생원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591년 - 김담수 선공감참봉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03년 - 김담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96년 - 김담수 낙암서원 배향 |
출생지 | 성주목 윤동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
거주|이주지 | 죽암 -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죽암리 |
사당|배향지 | 낙암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대바위길 183-13[죽암리 292-2]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의성(義城) |
대표 관직|경력 | 선공감참봉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지역에 이주하여 정착한 학자.
[가계]
김담수(金聃壽)[1535~1603]의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태수(台叟), 호는 서계(西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직 김귀손(金貴孫)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 김윤적(金允迪)이다. 아버지는 참봉 김관석(金關石)이고, 어머니는 박탄(朴坦)의 딸 순천 박씨(順天 朴氏)이다. 부인은 조몽길(曺夢吉)의 딸 창녕 조씨(昌寧 曺氏)이고, 아들은 김정룡(金廷龍)·김정헌(金廷獻)·김정직(金廷稷)·김정계(金廷契)·김정견(金廷堅)이다.
[활동 사항]
김담수는 1535년(중종 30) 경상도 성주목 윤동(倫洞)[현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성주로 유배된 이문건(李文楗)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성장하여서는 조식(曺植)의 문인인 오건(吳健)과 이황(李滉)의 문인인 황준량(黃俊良)에게 수학하였다. 1564년(명종 19)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 공부에 뜻을 두지 않고 처가가 있는 합천(陜川)에 머물며 조식에게 수학하였다. 또한 김우옹(金宇顒)·정구(鄭逑) 등과 교유하였다.
1591년(선조 24) 김담수는 유일로 천거되어 선공감참봉에 제수되었지만, 늙은 나이에 관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사양하였다. 관직을 사양한 일을 계기로 선조는 김담수에게 ‘황계처사(黃溪處士)’라는 호를 내리고 역(役)을 면제하는 복호(復戶)의 혜택을 주었다.
김담수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야산으로 피난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예안·안동으로 피난하여 이황의 문인인 조목(趙穆)·김부륜(金富倫)·금난수(琴蘭秀)·금응훈(琴應壎) 등과 교유하였다. 1598년 어머니가 사망하였지만 전란 중이어서 고향 성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상주에서 장례를 치렀다. 김담수는 어머니의 장례를 계기로 지금의 상주시 중동면 죽암리에 정착하였다. 김담수는 1603년 상주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담수의 저술로는 『서계일고(西溪逸稿)』 3권 1책이 전한다. 『서계일고』에는 임진왜란 때 김담수의 우국충정을 엿볼 수 있는 시와 임진왜란의 정세와 참상을 담은 여러 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김담수는 1796년(정조 20) 현 상주시 중동면 대바위길 183-13[죽암리 292-2]에 있는 낙암서원(洛嵓書院)에 배향되었다. 성주 청천서원(晴川書院)에도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