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809
한자 金得培
영어공식명칭 Kim Deukbae
이칭/별칭 난계(蘭溪),문충(文忠)
분야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위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12년연표보기 - 김득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30년 - 김득배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351년 - 김득배 우부대언 제수
활동 시기/일시 1357년 - 김득배 추밀원직학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359년 - 김득배 도지휘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360년 - 김득배 정당문학 역임
활동 시기/일시 1361년 - 서북면도병마사 임명
몰년 시기/일시 1362년연표보기 - 김득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391년 - 김득배 신원 및 포상
추모 시기/일시 1631년 - 김득배 옥성서원 배향
추모 시기/일시 1452년 - 김득배 숭의전 배향
출생지 상주 - 경상북도 상주시
사당|배향지 옥성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외남면 신상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숭의전 -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본관 상산(商山)
대표 관직 정당문학

[정의]

고려 후기 상주 출신의 문신.

[가계]

김득배(金得培)[1312~1362]의 본관은 상산(商山)이며, 호는 난계(蘭溪),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지연(金之衍)이고, 할아버지는 김일(金鎰)이다. 아버지는 판전의를 지낸 김록(金祿)이고, 동생은 김득제(金得齊)·김선치(金先致)이다.

[활동 사항]

김득배는 1312년(충선왕 4) 상주에서 태어났다. 1330년(충숙왕 17)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에 제수되었고, 여러 관직을 거쳐 전객부령에 올랐다. 공민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숙위하였으며, 공민왕이 즉위하자 우부대언에 제수되었다. 1356년 공민왕이 반원 개혁 정책을 펴면서 기철을 숙청할 때 공을 세워 1359년 2등 공신에 녹훈되었다. 1357년(공민왕 6) 서북면홍두왜적방어도지휘사(西北面紅頭倭賊防禦都指揮使)가 되었다가 이어 추밀원직학사로 옮겼고, 서북면도순문사 겸 서경윤이 되었다.

1358년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자 김득배는 6월에 서경군민만호부 부만호에 임명되었다. 1359년 추밀원사·동지추밀원사에 제수되었고, 12월에 모거경(毛居敬)이 홍건적 4만 명을 거느리고 침입하여 정주에서 도지휘사 김원봉(金元鳳)을 죽이고 인주까지 함락하자 김득배는 도지휘사가 되어 서경을 탈환하고 압록강 밖으로 홍건적을 몰아냈다. 1360년 3월 홍건적을 격퇴한 공으로 수충보절정원공신에 녹훈되고 정당문학에 제수되었다.

1361년 10월 홍건적 10만 명이 다시 고려를 침범하여, 삭주(朔州)·니성(泥城)·무주(撫州)·안주(安州)를 함락하고 흥의역(興義驛)에 이르렀다. 김득배는 서북면도병마사가 되어 상원수 안우(安祐), 도지휘사 이방실(李芳實) 등과 함께 홍건적에 맞서 싸웠으나 안주에서 대패하여 개경까지 함락되었다. 1362년 안우·이방실·최영(崔瑩)·이성계(李成桂) 등과 함께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총병관 정세운(鄭世雲)의 지휘 아래 홍건적을 격퇴하였다. 이때 정세운과 권력을 다투던 김용이 거짓으로 조서를 꾸며 김득배·안우·이방실에게 정세운 살해를 명하자 김득배 등은 의심 없이 정세운을 살해하였다. 이로 인하여 안우와 이방실이 처형되었으며, 김득배도 산양현(山陽縣)에 숨었다가 체포되어 상주에서 효수되었다.

[학문과 저술]

김득배의 저술로는 『동문선(東文選)』에 「제김해객사(題金海客舍)」라는 칠언절구 한 수가 전한다.

[상훈과 추모]

김득배는 1391년(공양왕 3) 방사량(房士良)의 건의로 누명이 벗겨져 포상과 더불어 증직되었다. 1452년(문종 2) 숭의전(崇義殿)에 복지겸(卜智謙)·홍유(洪儒)·신숭겸(申崇謙)·유금필(庾黔弼)·배현경(裵玄慶)·서희(徐煕)·강감찬(姜邯贊)·윤관(尹瓘)·김부식(金富軾)·김취려(金就礪)·조충(趙冲)·김방경(金方慶)·안우·이방실·정몽주(鄭夢周) 등과 함께 배향되었다. 1631년(인조 9)에는 상주 옥성서원(玉成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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