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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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安節 |
영어공식명칭 | Kim Anjeol |
이칭/별칭 | 자형(子亨),낙애(洛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출신의 학자.
[가계]
김안절(金安節)[1564~1632]의 본관은 상산(商山)이며, 자는 자형(子亨), 호는 낙애(洛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승의부위 김광범(金光範)이고, 할아버지는 안기도찰방 김표(金彪)이다. 아버지는 수의부위 김종선(金宗善)이고, 어머니는 이재(李宰)의 딸 진성 이씨(眞城 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조광헌(趙光憲)의 딸 풍양 조씨(豊壤 趙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충의위 이대수(李大授)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활동 사항]
김안절은 1654년(명종 19) 상주에서 태어나 박수일(朴遂一)과 성윤해(成允諧)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정경세(鄭經世)·이준(李埈) 등과 교유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종숙 김일(金鎰)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늙은 어머니의 병환을 돌보기 위하여 예안(禮安) 온계(溫溪)로 피난을 떠났다가 전란이 끝난 후 상주로 돌아왔다.
김안절은 1605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28년(광해군 10) 인목대비(仁穆大妃)가 유폐되자 북쪽을 향하여 통곡하고 두문불출하였다고 한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준·고인계(高仁繼)·조광벽(趙光璧) 등과 함께 여러 고을에 격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켰다. 김안절은 1632년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안절의 저술로는 『낙애유고(洛涯遺稿)』 3권 1책이 전한다. 『낙애유고』에 수록된 「식사육부(食舍肉賦)」는 광해군의 인목대비 유폐를 풍자한 부(賦)이며, 「갑자괄변창의시모병속문(甲子适變倡義時募兵粟文)」은 이괄의 난 때 병력을 모으기 위하여 작성한 창의문이다.
[상훈과 추모]
김안절은 1692년(숙종 18)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화산리에 있던 화암서원(花巖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