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824 |
---|---|
한자 | 南嶸 |
영어공식명칭 | Nam Young |
이칭/별칭 | 사수(士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548년 - 남영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601년 - 남영 조지서별제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3년 - 남영 장흥고직장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3년 - 남영 통정대부 가자 |
활동 시기/일시 | 1605년 - 남영 오위장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5년 - 남영 진천현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6년 - 남영 양성현감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14년 - 남영 첨지중추부사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16년 - 남영 음죽현감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616년 - 남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16년 - 남영 가선대부 병조참판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646년 - 남영 의정부좌참찬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752년 - 남영 청암서원 배향 |
출생지 | 한성부 - 서울특별시 |
거주|이주지 | 함창현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
활동지 | 양성현 -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
활동지 | 음죽현 - 충청북도 음성군 |
성격 | 문신|의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음죽현감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이자 의관.
[가계]
남영(南嶸)[1548~1616]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사수(士秀)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훈련원도정 남희(南暿)이고, 할아버지는 삭녕군수 남숙(南俶)이다. 아버지는 부사과 남예석(南禮錫)이고, 어머니는 수문장 김세균(金世均)의 딸 상산 김씨(商山 金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부장 한윤복(韓胤福)의 딸 청주 한씨(淸州 韓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군자감첨정 윤순(尹淳)의 딸 파평 윤씨(坡平 尹氏)이다. 아들은 남창조(南昌朝)·남창우(南昌宇)·남창하(南昌夏)이다.
[활동 사항]
남영은 1548년(명종 3)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으나 이후 경상도 함창현[현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일찍이 어머니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하여 의술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침을 놓고 약을 쓰는 일로 향촌에서 상당한 명성을 떨쳐 1601년(선조 32) 선조가 침을 맞는 데 침의 자격으로 입시하기도 하였다.
남영은 관직에는 뜻이 없었으나 1601년 류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조지서별제가 되었고, 안기도찰방 등을 거쳐 1603년 장흥고직장에 제수되었다. 당시 선조가 갑자기 편두통을 앓게 되었을 때 남영이 침을 놓아 치료하였고, 이에 선조는 여러 대간(臺諫)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영의 품계를 통정대부로 올려 주었다.
남영은 1605년 오위장·진천현감에 제수되었고, 1606년 양성현감으로 부임하기도 하였지만 관직 생활의 대부분을 침의로 활동하며 왕의 병환을 치료하였다. 1614년(광해군 6)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고, 1616년 음죽현감으로 부임하여 재임 중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남영이 사망하자 광해군은 부왕인 선조를 치료한 공으로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추증하였다. 1646년(인조 24)에는 둘째 아들 남창조(南昌祖)가 영국원종공신에 녹훈되면서 의정부좌참찬에 추증되었다. 남영은 1752년(영조 28) 지금의 상주시 공검면 예주3길 29-32[예주리 산19-1]에 건립된 청암서원(淸巖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