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819
한자 金俊臣
영어공식명칭 Kim Junsin
이칭/별칭 절곡(節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1년연표보기 - 김준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김준신 임진왜란 때 창의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김준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89년 - 김준신 설단
추모 시기/일시 1792년 - 김준신 충신의사단 사액
추모 시기/일시 1794년 - 김준신 충신의사단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819년 - 김준신 사헌부집의 추증
거주|이주지 판곡 -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지도보기
활동지 상주읍성 - 경상북도 상주시 남성동 지도보기
성격 의병장
성별 남성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출신의 의병장.

[가계]

김준신(金俊臣)[1561~1592]의 본관은 청도(淸道)이며, 호는 절곡(節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장수도찰방 김이인(金以仁)이고, 할아버지는 부사직 김승조(金承祖)이다. 아버지는 수의부위 김흡(金洽)이고, 어머니는 경주 김씨(慶州 金氏)이다. 부인은 훈련원참군 신호(申浩)의 딸 고령 신씨(高靈 申氏)이고, 아들은 김백일(金百鎰)이다.

[활동 사항]

김준신은 1561년(명종 16)에 태어나 상주 판곡[현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에 거주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상주읍성으로 들어갔고, 상주목사 김해(金澥)는 김준신에게 크고 작은 군무를 맡겼다. 이때 경상도관찰사 김수(金睟)가 경상도 북부 지역의 수령에게 대구로 결집하라는 명을 내렸고, 김준신은 상주목사 김해와 함창현감 이국필(李國弼) 부대의 선봉이 되어 대구로 향하였다. 얼마 뒤 칠곡 석전(石田)에 다다랐을 때 순변사 이일(李鎰)보다 일본군이 먼저 당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해와 이극필을 비롯한 부대원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이후 상주성으로 돌아온 김준신은 상주판관 권길(權吉) 등과 함께 순변사 이일의 지휘하에 왜군으로부터 상주성을 방어하였고, 4월 25일 상주 북천(北川)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준신의 행적과 추숭 과정에서 생산된 각종 문서를 엮은 1권 1책의 『절곡선생유적(節谷先生遺蹟)』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1789년(정조 13) 상주 지역민이 북천에서 순절한 김준신·윤섬(尹暹)·이경류(李慶流)·박호(朴箎)를 제향하기 위하여 단(壇)을 설치하였고, 1792년 정조는 ‘충신의사단(忠臣義士壇)’으로 사액하고 손수 제문을 써 주었다. 1794년에는 충신의사단 옆에 충신의사단비(忠臣義士壇碑)를 세웠다.

김준신은 1819년(순조 19) 사헌부집의에 추증되고 충신 정려를 하사받았다. 지금의 상주시 경상대로 3123[만산동 699] 상주 임란북천전적지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으며, 고향 마을인 판곡리에는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尙州 金俊臣義士 祭壇碑)가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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