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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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楫 |
영어공식명칭 | Shin Jip |
이칭/별칭 | 여섭(汝涉),하음(河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가계]
신집(申楫)[1580~1639]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여섭(汝涉), 호는 하음(河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호군 신종위(申從渭)이고, 할아버지는 습독 신연(申演)이다. 아버지는 주부 신경남(申慶男)이고, 어머니는 참봉 권제세(權濟世)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사정 홍덕록(洪德祿)의 딸 부림 홍씨(缶林 洪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김계(金繼)의 딸 상산 김씨(商山 金氏)이다. 아들은 신광하(申光夏)·신광욱(申光旭)·신광성(申光星)이다.
[활동 사항]
신집은 1580년(선조 13) 외가인 안동 송촌리(松村里)[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서 태어나 정경세(鄭經世)와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6년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1608년 삼척교수가 되었다. 이후 정자와 저작을 거쳐 1612년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다.
신집은 1613년 영창대군의 옥사가 일어나고 정국이 혼란해지자 관직을 버리고 함창현(咸昌縣) 율촌(栗村)[현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사근리]에 우거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구례현감에 제수되었으며, 1626년 형조좌랑을 거쳐 강원도도사로 부임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군량미 조달과 민심 안정에 힘을 기울였다. 1628년 형조정랑에 임명되었고, 유효립(柳孝立) 모반 사건의 추국에 참여하여 영사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이어 공청도도사를 거쳐 1630년 무안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의병장이 되었다.
신집은 1637년 한성서윤과 형조정랑, 1638년 성균관사예와 공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병환으로 부임하지 않았다. 1639년 사복시정에 임명되었으며, 임금으로부터 표리(表裏)와 구마(廐馬), 그리고 『근사록(近思錄)』 1책을 하사받았다. 1639년 8월 밀양부사에 제수되었는데, 부임하기 전 성묘를 하러 왔다가 병이 깊어져 9월 24일 고향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신집의 저술로는 1825년 간행된 『하음집(河陰集)』 9권 5책이 전한다.
[묘소]
신집의 묘소는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하풍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