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8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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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以性 |
영어공식명칭 | Jeon Iseong |
이칭/별칭 | 성지(性之),운계(雲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순한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지역에서 수학한 문신.
[가계]
전이성(全以性)[1578~1646]의 본관은 용궁(龍宮)이며, 자는 성지(性之), 호는 운계(雲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인(全仁)이고, 할아버지는 전몽규(全夢奎)이다. 아버지는 전위(全緯)[『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는 전행(全緈)으로 기록]이고, 어머니는 장령 진호(秦浩) 딸 영춘 진씨(永春 秦氏)이다. 부인은 황윤규(黃潤奎)의 딸 창원 황씨(昌原 黃氏)이고, 아들은 전상구(全尙耉)·전후구(全厚耉)·전익구(全翼耉)·전유구(全裕耉)이다.
[활동 사항]
전이성은 1578년(선조 11)에 태어나 성주의 정구(鄭逑)와 상주의 정경세(鄭經世)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6년 증광시 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좌랑과 병조좌랑 등을 역임하고 다섯 군현의 수령을 지냈으며, 고성과 합천에서는 전이성의 선정을 기리는 거사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광해군 대에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고향 예천으로 돌아가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전이성은 인조반정 이후 다시 종부시정에 임명되었고, 춘추관편수관을 겸하여 『광해군일기』 편찬에 참여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황해도 아사(亞使)로 임명되어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1630년 용성(龍城)에 유배되었다가 부안에 이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에는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하다가 1646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전이성은 저술로는 문집인 『운계집(雲溪集)』 4권 2책이 전한다.
[묘소]
전이성의 묘소는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과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전이성은 사망한 뒤 도승지에 추증되었고, 1910년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가야리에 있던 가야사우(佳野祠宇)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