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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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南軾 |
영어공식명칭 | Cho Namsik |
이칭/별칭 | 계의(季擬)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개항기 상주 출신의 문신.
[가계]
조남식(趙南軾)[1845~1920]의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계의(季擬)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술요(趙述堯)이고, 할아버지는 조욱영(趙郁榮)이다. 아버지는 형조참의 조준구(趙駿九)이고, 어머니는 강선영(姜選永)의 딸 진주 강씨(晉州 姜氏)이다. 큰아버지 조기문(趙起文)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첫 번째 부인은 선공감감역 이만연(李萬淵)의 딸 광주 이씨(廣州 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김유일(金有一)의 딸 선산 김씨(善山 金氏), 세 번째 부인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활동 사항]
조남식은 1845년(헌종 11) 상주에서 태어났다. 1865년(고종 2)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873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가 되었다. 이후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을 거쳐 1874년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1882년 홍문관수찬, 1885년 사간원사간, 1886년 형조참의, 1887년 승정원동부승지에 제수되었다. 1889년 남원부사로 부임하였고, 1891년 사간원대사간에 올랐다. 1892년 전라도암행어사 이면상(李冕相)의 서계로 남원부사 재임 중 사사로이 세금을 거둔 사안에 대하여 논죄가 이루어졌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단행되자 조남식은 1896년 유림들이 일으킨 을미의병에 가담하였다. 1897년 중추원의관으로 임명되었고, 1911년 풍양 조씨 문중이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에 설립하려 한 사립풍창학교(私立豊昌學校)의 교장을 맡았으나 일제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하였다. 조남식은 1920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