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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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貴達 |
영어공식명칭 | Hong Gwidal |
이칭/별칭 | 겸선(兼善),허백정(虛白亭),함허정(涵虛亭),문광(文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재현 |
출생 시기/일시 | 1438년 - 홍귀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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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61년 - 홍귀달 별시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67년 - 홍귀달 이시애의 난 진압 기여 |
활동 시기/일시 | 1481년 - 홍귀달 천추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94년 - 홍귀달 국장도감제조로 국장 주관 |
활동 시기/일시 | 1498년 - 홍귀달 무오사화로 좌천 |
활동 시기/일시 | 1504년 - 홍귀달 경원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504년 - 홍귀달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507년 - 홍귀달 문광(文匡) 시호를 하사받음 |
출생지 | 여물리 -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여물리 |
거주|이주지 | 여물리 -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
묘소|단소 | 홍귀달 묘소 -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
사당|배향지 | 임호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신흥2길 19-8[신흥리 377] |
사당|배향지 | 양산서원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4길 32[남산리 296]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부림(缶林) |
대표 관직 | 이조판서|대제학 |
[정의]
조선 전기 상주 출신의 문신.
[가계]
홍귀달(洪貴達)[1438~1504]의 본관은 부림(缶林)[부계(缶溪)]이며, 자는 겸선(兼善), 호는 허백정(虛白亭)·함허정(涵虛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재감정 홍순(洪淳)이고, 할아버지는 홍득우(洪得禹)이다. 아버지는 홍효손(洪孝孫)이고, 어머니는 노집(盧緝)의 딸 안강 노씨(安康 盧氏)이다. 부인은 김숙정(金淑貞)의 딸 상산 김씨(商山 金氏)이고, 아들은 홍언필(洪彦弼)·홍언승(洪彦昇)·홍언방(洪彦邦)·홍언충(洪彦忠)·홍언국(洪彦國)이다. 형은 홍귀통(洪貴通)이다.
[활동 사항]
홍귀달은 1438년(세종 20) 경상도 상주목 함창현 여물리[현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여물리]에서 태어났다. 1459년(세조 5)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461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병마평사(兵馬評事)로 공을 세워 공조정랑이 되었다. 예종이 즉위하자 홍문관과 예문관 직을 역임하며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홍귀달은 1481년(성종 12)에는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83년 『국조오례의주(國朝五禮儀註)』 개정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후 충청도관찰사·형조참판·이조참판·대제학·대사헌·우참찬·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호조판서로 재직 중이던 1494년에 성종이 사망하자 국장도감제조(國葬都監提調)가 되어 국상을 주관하였다. 연산군 즉위 초에는 신임을 받아 조정에 있으면서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고,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좌천되었다.
홍귀달은 연산군의 폭정이 계속되자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간언하다가 왕의 눈 밖에 나서 다시 좌천되었다. 1504년 3월에는 경기도관찰사 재직 시 손녀를 궁에 들이라는 연산군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원에 유배되었고, 6월에 유배지로 향하던 중 갑자사화가 발발하여 단천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학문과 저술]
홍귀달의 저술로는 문집인 『허백정집(虛白亭集)』이 전하는데, 후손들이 집에서 보관 중이던 유문(遺文)을 수습하여 1611년(광해군 3)에 간행하였다. 1843년(헌종 9) 나머지 글도 수습하여 속집을 간행하였다.
[묘소]
홍귀달의 묘소는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홍귀달은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으며, 1507년(중종 2)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고 문광(文匡)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지금의 상주시 함창읍 신흥2길 19-8[신흥리 377]에 있는 임호서원(臨湖書院)과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남산4길 32[남산리 482-6]에 있는 양산서원(陽山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