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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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鎬 |
영어공식명칭 | Hong ho |
이칭/별칭 | 숙경(叔京),무주(無住),동락(東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재현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홍호(洪鎬)[1586~1646]의 본관은 부림(缶林)[부계(缶溪)]이며, 자는 숙경(叔京), 호는 무주(無住)·동락(東洛)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언국(洪彦國)이고, 할아버지는 홍경삼(洪景參)이다. 아버지는 홍덕록(洪德祿)이고, 어머니는 류승선의 딸 진주 류씨(晉州 柳氏)이다. 부인은 고종후(高從厚)의 딸 장흥 고씨(長興 高氏)이고, 아들은 홍여렴(洪汝濂)·홍여하(洪汝河)이다.
[활동 사항]
홍호는 1586년(선조 19) 상주목 함창현 율곡[현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에서 태어났다. 정경세(鄭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606년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난 후 병조정랑에 제수되었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경상도 호소사인 정경세(鄭經世)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여 사간원정언에 제수되었다. 이후 광해군 대의 권신인 박승종(朴承宗)은 부끄러움을 아는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적몰한 재산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고, 이후 반정 공신들의 배척을 받아 영변판관으로 좌천되었다.
홍호는 조정에 복귀한 뒤 사헌부장령·성균관사예 등을 역임하였고, 1632년에는 주청사(奏請使)의 서장관으로 사행을 다녀왔다. 이후 안음현감·흥해군수·참의·승지 등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1644년 사간원대사간에 제수되었다. 홍호는 1646년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뒤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홍호의 저술로는 문집인 『무주일고(無住逸稿)』 6권 2책이 전한다.
[묘소]
홍호의 묘소는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