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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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康夏 |
영어공식명칭 | Lee Kang-ha |
이칭/별칭 | 운약(雲若)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73년 6월 28일 - 이강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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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6년 - 이강하 김산의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40년 10월 28일 - 이강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8년 8월 15일 - 이강하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나호리 -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
거주|이주지 | 금산리 -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금산리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성 |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의병.
[가계]
이강하(李康夏)[1873~1940]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운약(雲若)이다. 아버지는 김산의진(金山義陣)의 창의장 이기찬(李起璨)이다.
[활동 사항]
이강하는 1873년 6월 28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에서 태어나,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금산리 340에 거주하였다. 1896년 3월 아버지 이기찬이 김산의진의 창의장으로 추대되어 김천·영동·황간·보은·상주 일원에서 의병 활동을 벌일 때 이강하는 이기찬을 따라 의병에 참여하였다. 이강하는 상주 일원에서 활동하다가 1896년 6월 체포되어 상주감옥에 수감되었다.
참령(參領) 이겸재(李謙齋)의 심문에 이강하는 자신의 행위를 중국 송나라 때 충신으로 참소를 당하여 죽은 악비(岳飛)에 비유하며 항변하였다. 이겸재가 사형에 처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안동부관찰사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가 이겸재에게 보낸 글 덕분에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이강하는 1940년 10월 28일 사망하였다.
[묘소]
이강하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강하의 공적을 기려 2018년 8월 15일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