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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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동관2길 219-36[동관리 산178-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현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11월 30일 - 「관음사 터」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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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관음사 터 -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동관2길 219-36[동관리 산178-1] |
관련 지명 | 절골 -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동관2길 219-36[동관리 산178-1] |
관련 지명 | 상주 관음사지 사적비 -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동관2길 219-36[동관리 산178-1] |
성격 | 지명 전설|풍수지리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주지|도인 |
모티프 유형 | 지명 유래담|풍수지리담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에 있는 관음사 절터에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관음사 터」에 나오는 관음사(觀音寺) 절터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에 있는 절골마을 일대이다. 옛날부터 절이 있었다고 하여 ‘절골’이라고 불린다. 관음사는 통일 신라 시대의 승려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상주 관음사지 사적비(尙州 觀音寺址 事蹟碑)에 의하면, 관음사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당하여 모두 불에 탔는데, 보정대사(寶晶大師)가 승과에 합격하고 와서 다시 옛날처럼 지었다고 한다. 또한 1678년(숙종 4) 화재로 반이나 불에 타자 민간태사(敏侃泰士)를 중심으로 하여 주위의 협조를 구하여 다시 법당과 승방을 지었다.
[채록/수집 상황]
「관음사 터」는 2010년 11월 30일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신라 시대에 절골마을에는 사찰이 좌측 명전대와 우측 금선대 바위산을 끼고 크게 번성하였다. 수많은 부도탑이 있었고, 승려만 무려 수백 명이어서 쌀을 찧는 물레방아가 열두 개나 있었다. 쌀을 씻은 물이 충청북도 장안까지 흘러갔을 정도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신자들에게 재물을 강탈하고 여신도를 욕보이는 등 번성하던 절에 부패가 만연하였다.
하루는 한 도인이 절에 찾아와 물을 청하였다. 하지만 도인의 행색이 남루한 것을 본 승려들은 도인을 하찮게 여기고 말에게 먹이는 물을 주었다. 도인이 떠나면서 마을 입구에 비석을 세우고 대웅전 부근에 작은 연못을 파면 몇 년 안에 절이 더욱더 번성하겠다고 말하였다. 절골은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혈(臥牛穴)에 있어서 ‘우복동(牛腹洞)’이라고도 하였는데, 도인이 알려 준 비석과 연못의 위치는 소의 목과 배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도인이 떠난 후, 욕심 많은 관음사 승려들이 마을 입구에 큰 사적비(寺蹟碑)를 세우고 대웅전 부근에 연못을 팠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며, 맞은편에 있는 구병산(九屛山)에서 큰 불덩이가 날아와 절을 불태우기 시작하였다. 놀란 주지가 지장보살을 업고 가서 지장소에 넣었다. 그때 지장소에서 황금 송아지 두 마리가 나오더니 한 마리는 속리산(俗離山)으로 날아가고, 한 마리는 경주(慶州)로 날아가 법주사(法住寺)와 불국사(佛國寺)가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관음사 터」의 주요 모티프는 ‘절터의 유래’, ‘와우혈 지형의 절터’ 등이다. 「관음사 터」는 관음사 절터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유래담이다. 또한 관음사가 불에 타서 망한 것을 풍수지리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 풍수지리담이다. 풍수지리는 자연물의 위치와 형태가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상이다. 풍수지리 사상에 따르면 관음사가 있던 절터는 원래 복을 주는 명당이다. 관음사는 소가 배부르게 먹고 누워 있는 형태인 와우혈의 땅에 있었다. 그러나 욕심 많은 승려들이 도인을 박대하였고, 도인이 거짓으로 알려 준 방법을 따르다 오히려 명당을 해치고 말았다. 그로 인하여 관음사는 불에 타게 되었고, 주지는 지장보살을 지장소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지장소에 들어간 지장보살은 황금 송아지 두 마리가 되어 나오더니 속리산과 경주로 날아가 각각 법주사와 불국사가 되었다고 한다. 관음사 절터가 가지고 있던 명당으로서의 운이 충청북도에 있는 속리산 법주사와 경주 불국사로 옮겨 간 것이다. 관음사가 불에 탄 유래와 더불어 법주사와 불국사가 탄생하게 된 유래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처럼 「관음사 터」는 관음사가 실제로 불타 버린 일을 풍수지리 사상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관음사가 불탄 것은 승려들이 도인을 하찮게 여기는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며, 현재의 풍요로움에 만족하지 못하고 부귀에 눈이 멀어 도인의 잘못된 가르침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즉, 「관음사 터」는 인간의 과한 욕심으로 명당을 잃은 이야기로서,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사고와 함께 과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옛 상주 지역민들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