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20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은정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11월 30일 - 「김일 따님의 효행」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 |
---|---|
관련 지명 | 김일 효녀각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내곡리 |
성격 | 인물 전설|효행담 |
주요 등장 인물 | 김일|김일의 딸|김일의 부인|일꾼|왜병 |
모티프 유형 | 효행담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내곡리에 있는 효녀각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김일 따님의 효행」은 전쟁의 위험 속에서 부모의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에 안장한 딸에 대한 인물 전설이자 효행담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활약한 의병장 김일(金鎰)[?~1592]의 딸이 행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김일 효녀각은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내곡리에 있다.
[채록/수집 상황]
「김일 따님의 효행」은 2010년 11월 30일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되어 있으나, 채록 시기와 장소는 명확하지 않다.
[내용]
경상북도 상주시의 자산과 북천 일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중앙군과 일본의 선봉 주력 부대가 최초로 싸움을 벌인 곳이다. 800여 명의 조선군과 의병이 장렬히 순국하였으니 그야말로 호국의 성지라 할 만하다. 지금의 낙동면 화산리에 살았던 김일도 함락된 상주성을 되찾기 위하여 향병 500여 명을 모아 북계에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당시 김일의 딸은 열일곱 살의 꽃다운 처녀였는데, 아버지의 전사 소식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너무나 애통해하며 슬픔을 가누지 못하였다. 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아버지의 시신을 모셔 와서 장례를 치러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길을 나섰다. 집의 일꾼을 앞세우고 자지러지는 어머니를 부축하여 겨우 싸움터에 당도하였다. 싸움터에는 흐르는 피가 내를 이루고 시체가 산같이 쌓여 있었다. 너무나 처참한 광경을 마주하니 정신이 아득하여지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게다가 왜병들의 눈을 피하며 많은 시신 속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신을 살피다 왜병이 나타나면 시신들 틈에 몸을 숨기기도 하였다. 그러다 사흘 만에 가까스로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냈다. 바로 그 순간 왜병들이 뛰어들어 어머니를 위협하였다. 왜병을 마주한 어머니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네놈들 때문에 죽은 지아비 시신도 못 모셔 간다는 말이냐? 어디 죽일 테면 죽여 봐라.” 어머니는 칼을 빼든 왜병 앞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의연히 나서서 항변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왜병의 칼에 어머니가 푹 꼬꾸라졌다. 김일의 딸은 눈앞이 캄캄하였다. 황망하게 어머니마저 잃자 자신도 죽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마음을 다졌다. 기세 높던 왜병들은 양민을 죽였다는 죄책감에서인지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었다. 김일의 딸은 그사이에 일꾼에게 아버지를 업어 모시게 하고 자신은 어머니를 업고 일어섰다.
피눈물을 닦으며 밤길 30여 리[약 11.7㎞]를 걸어 고향 장천[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화산리]의 옥산 뒷산에 도착하여 부모님을 안장하였다. 김일의 무덤 ‘조선의사김일지묘(朝鮮義士金鎰之墓)’는 바로 김일의 고명딸이 정성을 다하여 자리 잡은 것이다. 딸은 부모님의 묘소 옆에 묘막을 짓고 시묘를 지내고자 하였으나 여자의 시묘는 예법에 없다는 집안 어른들의 만류로 좌절되었다. 눈물로 삼년상을 마친 뒤에는 감역(監役) 김광윤(金光潤)에게 출가하였다. 딸은 “내가 아들로 태어났다면 원수 갚는 일에 이 몸을 던질 테지만 불행하게도 아버지의 뒤를 이을 후손이 없으니 망극한 일”이라 하였다.
김일의 거룩한 순절은 많은 의병들이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키는 일에 동참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평정된 뒤 조정에서 김일에게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추증하고 충의단(忠義壇)에 입향하게 하였다. 정조(正祖) 대는 의사(義士)의 칭호를 내려 주었고 김일의 딸에 대하여서는 ‘효녀 심청 재생(再生)’이라고 칭찬하고 출생지[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내곡리]에 효녀각을 짓게 하였다.
[모티프 분석]
「김일 따님의 효행」의 주요 모티프는 ‘위험 속에서 부모의 시신을 수습하는 효녀’이다. 일반적인 효행담은 효자가 늙거나 병든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김일 따님의 효행」은 효행의 주체가 딸이고, 살아 있는 부모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죽은 부모의 시신을 수습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효행을 기리는 효녀각이 남아 있어 의미가 더욱 크게 전하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