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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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양범리 840-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현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년 12월 1일 - 「김회복의 효자각」 상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상주 이야기』 1권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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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11월 30일 - 「김회복의 효자각」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 |
관련 지명 | 김회복 효자각 -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양범리 840-1 |
성격 | 인물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김회복|김회복의 부모|박활인|나그네 |
모티프 유형 | 효행담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양범리에 있는 김회복 효자각에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김회복의 효자각」은 효자 김회복(金會福)이 지극한 효심으로 어머니의 병환을 낫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김회복은 함녕 김씨(咸寧 金氏) 집안의 사람이다.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살림에도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살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여러 산을 일주일 넘게 돌아다니면서 약을 구하여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김회복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상주 유림은 경학원(經學院)을 통하여 상금을 얻어 생긴 돈으로 효자각(孝子閣)을 세웠다고 한다. 김회복의 효자각은 1927년 5월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양범리에 건립하였다. 사방에 원주를 세운 팔각 합각 건물이다.
[채록/수집 상황]
「김회복의 효자각」은 2007년 12월 1일 상주문화원에서 발간한 『상주 이야기』 1권에 수록되었고, 2010년 11월 30일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
김회복은 1861년(철종 12)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서 글공부는 엄두도 내지 못하였지만 타고난 품성이 어질고 고와서 효성이 지극하였다. 자라면서 집안을 위한 일이라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해내었으며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잘 지어서 신농씨(神農氏) 부자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살림이 제법 나아졌을 때 김회복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산소를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금흔리로 정하였는데, 정하고 보니 집에서 너무 멀었다. 그래서 김회복은 묘역과 봉분을 크게 만들고 집을 아버지의 묘 옆으로 옮기었다. 시묘 중에 보니 주변에 개미가 들끓었다. 김회복은 시신에까지 개미가 파고들 것을 걱정하여 개미를 잡으며 며칠을 꼬박 보내었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시묘를 마치고 생활이 다시 안정되던 때에 이번에는 갑자기 어머니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말을 잃고 앓아누웠다.
김회복은 백방으로 약을 구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고심 끝에 강북의 백령산(白嶺山)에 어머니를 치료할 영약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바로 백령산으로 떠났다. 그러나 온 산을 찾아보아도 약은 구하지 못하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애만 태우며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김회복에게 물었다. “주인장, 얼굴에 수심이 가득 쌓였는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소?” 김회복이 “예. 어머니의 병환이 중하셔서 걱정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나그네가 한 가지 조언을 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왕망산(王望山)의 박활인(朴活人)이라는 사람이 용하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효성이 지극한 사람에게만 영약을 준다고 합니다.”
나그네가 떠나자 김회복은 곧장 박활인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박활인을 찾아 헤맨 지 며칠 만에 가까스로 박활인을 만나게 되었다. 김회복이 찾아온 이유를 말하자 묵묵히 듣고만 있던 박활인이 뒷산 바위굴에서 영약을 구하여 주었다. 김회복은 감사 인사를 한 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먹자마자 어머니의 병환이 씻은 듯이 나았고 그 후 김회복의 어머니는 오랜 세월 복을 누리다 죽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아버지 묘소 옆에 마련하고 김회복은 거동이 불편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성묘하였다.
나중에 김회복의 효행에 감탄한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의 유림(儒林)이 경학원(經學院)을 통하여 효자각을 세워 김회복의 효심을 오래 기리고자 하였다.
[모티프 분석]
「김회복의 효자각」의 주요 모티프는 ‘효자 김회복’, ‘지극한 효심’, ‘박활인(朴活人)의 영약’ 등이다. 「김회복의 효자각」은 실존 인물인 김회복의 효행을 다룬 효행담이다.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는 「김회복의 효자각」처럼 일반 백성들의 효행담이 많이 전하여지는 것이 특징이다. 상주 지역의 「청상리의 효자 유유발」, 「류 효자각에 얽힌 사연」, 「박선간 효자각」과 같은 설화들도 효행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이다. 효행 설화에서 효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부모의 약을 구하기 위하여 손가락·넓적다리살 등 신체의 일부를 자르거나 자식 삶음, 종살이, 품팔이 등 자식 또는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김회복의 효자각」에서는 김회복이 어머니의 약을 구하기 위하여 여러 날 동안 산을 뒤진다. 김회복의 노력과 지극한 효심에 감동한 나그네의 도움으로 김회복은 박활인의 영약을 구하게 된다. 박활인은 조선 전기 무신 박영(朴英)[1471~1540]인데, 「김회복의 효자각」에서는 영약을 주는 신이한 존재로 등장한다. 박영은 무신이지만 의술에 정통하여,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난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 의술로 활인(活人)을 행하였다고 전한다. 「김회복의 효자각」은 김회복의 지극한 효심에 대한 보상으로 실존 인물이었던 박영을 등장시켜 김회복의 효심을 부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사실성과 신이함을 더하고 있다. 「김회복의 효자각」을 통하여서는 효를 중요하게 여기는 옛 상주 지역민의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