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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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洞天岩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현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11월 30일 - 「동천암」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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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동천암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
성격 |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개운화상 |
모티프 유형 | 바위 이름의 유래|유래담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에 있는 동천암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에는 ‘우복동 21세기애향공원’이 있는데, 우복동 21세기애향공원에 ‘동천암(洞天岩)’이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다. 「동천암」은 바위 이름이 동천암으로 불리게 된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는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동천암」은 상주시에서 2010년 11월 30일에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동천암은 다섯 길[약 12m]이나 되는 평평하고 넓은 긴 바위이다. 위쪽에 ‘동천(洞天)’이라는 글씨가 초서로 음각되어 있다. 동천암은 바위의 길이와 글씨의 길이가 각각 똑같은 오장(五丈)이 된다 하여 ‘오장비(五丈碑)’라고도 부른다.
동천암 위에 새겨진 글씨는 조선 전기 문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쓴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양사언이 금강산 만폭동 동벽(洞壁)에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라고 같은 이름을 붙여 쓴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천암의 글씨는 양사언이 쓴 것이 아니라, 사실은 상주 개운리 출신인 개운화상이 열아홉 살 때인 1790년에 쓴 것이라고 한다. 개운화상은 속성(俗姓)이 김씨요, 어머니의 성은 양씨인데, 글씨가 양사언의 것과 흡사하였다고 한다. 저서로는 『유가심인정본수능엄경(瑜伽心印正本首楞嚴經)』의 초록이 있다.
동천암에 새겨진 글씨가 ‘동천(洞天)’인 것에 대한 추측 중 가장 유력한 설은 다음과 같다. 즉 ‘우복동천(牛腹洞天)’으로 써야 할 것인데, 우복동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승지(勝地)라서 함부로 밝힐 수 없어 ‘동천’이라고만 썼다는 것이다. 또는 우복동 고을은 하늘과 통하는 마을이란 뜻이어서 바위의 이름이 ‘동천암(洞天岩)’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모티프 분석]
「동천암」의 주요 모티프는 ‘동천암 이름의 유래’이다. 「동천암」은 바위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는 성격을 지닌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