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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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Song of Rice Transplantaion |
이칭/별칭 | 「모심기소리」,「모내기소리」,「이앙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미숙 |
채록 시기/일시 | 1987년 8월 7일 - 「모심기노래」 성귀옥에게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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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 시기/일시 | 1993년 9월 10일 - 「모심기노래」 최재근, 김복만에게서 채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0년 - 「모심기노래」 두 편이 『상주시사』 에 수록 |
채록지 | 만산동 - 경상북도 상주시 만산동 |
채록지 | 율림리 -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율림리 |
가창권역 | 상주시 - 경상북도 상주시 |
성격 | 민요 |
기능 구분 | 노동요 |
형식 구분 | 선후창|교환창 |
가창자/시연자 | 성귀옥|최재근|김복만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모내기할 때 부르는 노동요.
[개설]
「모심기노래」는 모판에서 뽑은 모를 정식으로 논에 옮겨 심을 때 부르는 노동요이다. 흔히 「모심기소리」, 「모내기소리」, 「이앙가」 등으로도 불린다. 예부터 농업 중심 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는 전국 각지에 분포하며 지역에 따라 사설의 내용과 형식, 창법 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경상북도 상주시에서도 여러 종류의 「모심기노래」가 전하여 오는데, 주로 한 사람이 앞서 부르면 나머지 사람이 받는 형식이며 남녀가 서로 교대로 부르기도 한다. 흔히 「상주모심기노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채련요」[「연밥 따는 노래」]도 상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모심기노래」의 일종이다.
[채록/수집 상황]
2010년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제4권 441쪽에는 「모심기노래」 2편이 실려 있는데, 1987년 8월 7일 지금의 상주시 만산동에 살던 제보자 성귀옥의 소리와 함께, 1993년 9월 10일 화서면 율림리에 살던 제보자 최재근, 김복만의 소리를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성귀옥에게서 채록한 「모심기노래」는 4·4조 형식이며 선후창으로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최재근과 김복만에게서 채록한 「모심기노래」는 앞소리와 받는소리로 구성되었는데, 채록된 내용이 모두 합하여 4행뿐이다.
[내용]
성귀옥에게서 채록한 「모심기노래」의 사설은 다음과 같다.
“요게 꼽고 조게 꼽고 하주 같은 논자리를/ 반달같이 새겨 냈네 그기 무슨 반달이라/ 초승달이 반달이지 초승달만 반달이가/ 그믐달도 반달일래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녀야 연밥을랑 내 따 주께/ 이내 푸메 잠드어라 잠들기는 어렵잖은데/ 연밥 따기 늦어 가요 황톨종자 싹이 나서/ 만고의 열매 열리는 신기로운 이 농사는/ 하늘땅의 조화로다 어허 농사 일꾼들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바람을 무릅쓰고/ 땀 흘리며 일을 삼네 어허 농사 일꾼들아/ 어허 농사가 장하도다 이 농사를 지어서러/ 상감님께 바친 후에 그 나머지 남은 것은/ 선조 조상 공지사 올리고 또 그 남은 남은 것은/ 처자석 나노 먹네.”
최재근과 김복만에게서 채록한 「모심기노래」의 사설은 다음과 같다. “[앞소리] 방실아 방실 고운 님을 못다 보고 해 다 지네/ [받는소리] 우리야 임은 어델 가고 지녁하실 줄을 모르시나// [앞소리] 임이야 없이 지은 밥은 돌도 많고 뉘도 많애/ [받는소리] 돌도야 많고 뉘 많은 것은 임이 없는 탓이로다.”
[현황]
모든 농사일이 현대화됨에 따라 농업 현장에서 「모심기노래」를 듣는 것은 어려워졌다. 지역에서 열리는 농사와 관련된 행사나 민속 행사에서 가끔 들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의의와 평가]
「모심기노래」가 노동요로서 불리는 경우는 없으나, 상주 지역의 「모심기노래」를 대표하는 「채련요」와 같이 뛰어난 작품성으로 대중화된 경우도 있다. 「채련요」는 「상주모심기노래」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알려져 있고 외국에도 「이앙가」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으며, 한국 민요 가운데에서도 가장 뛰어난 민요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