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1330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 정산2길 41-28[정산리 75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현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11월 30일 - 「민치문의 정효각」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
관련 지명 민치문 정효각 -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 정산2길 41-28[정산리 758]지도보기
성격 유래담|효행담|형제담
주요 등장 인물 민치문|아버지|계모|이복동생
모티프 유형 효행담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 정산리에 있는 민치문 정효각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민치문의 정효각」은 1895년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 정산리에 세워진 민치문 정효각(閔致文 旌孝閣)에 대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여흥 민씨(驪興 閔氏) 집안의 민치문(閔致文)이 아버지와 계모에게 효성을 다한 효행담이자 이복형제와도 사이좋게 지냈다는 형제담이기도 하다. 민치문의 효행은 고종으로부터 동몽교관(童蒙敎官)의 벼슬과 효자각으로 보답받았다. 민치문 정효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겹처마 건물이다.

[채록/수집 상황]

「민치문의 정효각」은 2010년 11월 30일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여흥 민씨인 효자 민치문은 묵헌(默軒) 민지(閔漬)[1248~1326]의 후손이다. 민치문은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에게 자랐다. 성질이 고약한 계모는 친자식이 아닌 민치문을 학대하였으나 민치문은 한 번도 계모에게 불응하지 않고 계모를 온갖 정성으로 섬기었다. 또한 민치문은 이복동생을 자상하게 돌보며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었다. 민치문은 아버지의 몸에 종기가 나자 하루도 빠짐없이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어 낫게 하였으며 계모가 죽자 시묘도 충실히 하였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 항상 동생과 상의하여 행하였으며 모든 범절이 어른과 다름없었다.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민치문의 지극한 효성은 여러 사람에게 귀감이 되었다. 1894년(고종 31)에 고종은 민치문의 이야기를 듣고 동몽교관의 벼슬을 내리었다. 또한 1895년 민치문 정효각을 건립하였다.

[모티프 분석]

「민치문의 정효각」의 주요 모티프는 효행담이다. 효자 민치문이 자신을 학대하는 계모와 병든 아버지에게 효성을 다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유교 윤리를 실천함으로써 보답을 받았다는 설화인데, 일반적으로 복을 받게 되었다거나 후대 자손이 잘되었다는 등의 다소 추상적인 결말을 맺는 데 반하여 「민치문의 정효각」에서는 당사자의 입신과 후대에 남을 효자각으로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상주 지역에서 유교 윤리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 방증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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