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1336
한자 寶窟庵
이칭/별칭 「보굴암에 얽힌 사랑 이야기」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문장로 2533-49[입석리 산29-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873년 - 「보굴암」 『금계필담(錦溪筆談)』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7년 12월 1일 - 「보굴암」 상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상주 이야기』 1권에 「보굴암에 얽힌 사랑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11월 30일 - 「보굴암」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
관련 지명 보굴암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문장로 2533-49[입석리 산29-1]지도보기
관련 지명 석문사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문장로 2533-49[입석리 산29-1]지도보기
성격 역사 전설|지명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단종|문종|수양대군|김종서|수양대군의 딸|유모
모티프 유형 지명 유래담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에 있는 보굴암에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보굴암(寶窟庵)」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에 있는 한 굴에 ‘보굴(寶窟)’이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가 담긴 이야기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옥량계곡 상류에 지붕처럼 생긴 거대한 층암이 있다. 층암 안에 굴이 하나 있는데, 사람들이 ‘보굴(寶窟)’이라고 부른다. 굴 깊은 곳에는 미륵불상이 있다. 미륵불상 뒤는 가파른 층벽이다. 나무를 휘어잡고 올라가면 왼쪽으로 깜깜하고 좁은 통로가 나 있다. 30m쯤 들어가면 뒤쪽 굴이 나오는데, 방 하나와 부엌 하나가 될 만한 크기이다. 다시 위로 오르면 밖으로 나와서 산등으로 오르게 된다. 중이 수양하는 거처로 보이는 보굴에는 수양대군(首陽大君)[1417~1468]의 딸과 김종서(金宗瑞)[1383~1453]의 손자가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채록/수집 상황]

「보굴암」은 1873년 서유영(徐有英)[1801~1874]이 저술한 『금계필담(錦溪筆談)』에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2007년 12월 1일 상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상주이야기』 1권에 「보굴암에 얽힌 사랑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2010년 11월 30일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는 「보굴암」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내용]

조선 시대 어린 단종(端宗)[1441~1457]이 왕위에 오르자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으려고 계략을 꾸몄다. 그런데 수양대군의 한 딸이 아버지가 하는 일이 옳지 못하다고 여겨, 아버지가 모의하는 일을 충신들에게 알리는 등 수양대군이 하는 일을 방해하였다. 이에 수양대군은 “너는 내 딸이 아니다”라고 꾸짖으며 노여워하였다. 수양대군의 과격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부인은 딸과 유모를 불렀다. 그러고는 딸에게 많은 패물을 주고 둘을 대궐 밖으로 내보냈다. 수양대군의 노여움이 풀릴 때까지 피하도록 한 것이다. 딸과 유모는 초라한 행색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굴을 발견하고 굴속에 숨어 살게 되었다.

한편 문종(文宗)[1414~1452]의 명을 받은 충신(忠臣) 김종서는 수양대군의 야욕을 눈치채고 단종을 보호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수양대군은 상황상 백성의 신망이 두텁고 조정에서도 위세가 있는 김종서를 그대로 두고는 대망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미리 김종서를 살해할 계략을 꾸민 뒤 무사 두세 명을 데리고 김종서의 집을 방문하였다. 수양대군은 마당에서 지나는 길에 죽앵(竹櫻)이 떨어져 들렀으니 갓끈을 하나 줄 것을 청하였고, 큰아들이 집안으로 들어간 사이 김종서를 살해한 뒤 갓끈을 가지고 나오는 큰아들과 가족들을 닥치는 대로 역적의 죄를 씌워 죽였다. 혼란 중에 유모의 도움으로 김종서의 손자가 탈출하여 도망쳤다. 김종서의 손자와 유모는 어머니와 아들처럼 위장을 하여 은신처를 찾아 헤매다가 굴에 숨어들었다.

공교롭게도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가 서로 원수의 자손인 줄 모르고 함께 살았다. 서로가 숨어 사는 처지인지라 신분을 밝히지도 않았다. 둘은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은 채 굴속에서 궁색하게 살았다. 두 사람의 안타까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두 유모는 서로 상의하여 둘을 혼인시키기로 하였다. 이로부터 앞쪽 굴에는 두 유모가 살고 뒤쪽 굴에는 신혼부부가 살았다.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굴이라고 하여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가 살았던 굴을 ‘보굴암’이라고 불렀다. 지금 보굴에는 약사여래부처(藥師如來佛)가 있다.

[모티프 분석]

「보굴암」의 주요 모티프는 ‘보굴암 이름의 유래’, ‘사돈이 된 원수’ 등이다. 「보굴암」은 상주에 있는 한 굴이 보굴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지명 유래담이다. 원수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보배 같은 굴이라고 하여 ‘보굴암’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원수는 실존 인물인 수양대군과 김종서를 말한다. 원수인 두 사람의 자손이 우연히 보굴암에서 만나 서로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내용의 설화로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에 전승되는 「사돈이 된 두 원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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