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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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士 金俊臣 父子 |
이칭/별칭 | 「의사 김준신과 낙화담」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현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년 12월 1일 - 「의사 김준신 부자」 상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상주 이야기』 1권에「의사 김준신과 낙화담」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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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11월 30일 - 「의사 김준신 부자」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3년 9월 - 「의사 김준신 부자」 상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상주의 인물』 2권에 수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5년 12월 1일 -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 경상북도 기념물 제113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 경상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관련 지명 |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 -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1길 11[판곡리 476] |
관련 지명 | 낙화담 -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1길 15-3[판곡리 476] |
관련 지명 | 상주 금흔리 이부곡 토성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금흔리 산1 |
성격 | 역사 전설|인물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김준신|아내|딸|아들 |
모티프 유형 | 인물담|효행담|열녀담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에 전하여 내려오는 김준신 부자와 관련된 이야기.
[개설]
「의사 김준신 부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 활동을 한 의사(義士) 김준신(金俊臣)[1561~1592]과 그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준신은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에 살던 시골 선비인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활동을 하였다. 전란 초기부터 ‘북천 전투(北川 戰鬪)’로 알려진 상주 지역 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우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공으로 의사(義士)가 되었으며, 충의단(忠義壇)에 배향되었다. 또한 사후에 종3품 관직인 집의(執義)의 관직을 받았다.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는 1995년 12월 1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1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의사 김준신 부자」는 2007년 12월 1일에 상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상주 이야기』 1권에는 「의사 김준신과 낙화담」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사 김준신 부자」는 2010년 11월 30일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도 수록되어 있고, 2013년 9월에 상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상주의 인물』 2권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
김준신이 태어날 때 기이한 일이 있었다. 동리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청의(靑衣)를 입은 병졸 수십 명이 큰 깃발을 옹위하고 큰 말을 몰면서 한 선관(仙官)을 모시고 늠름히 김준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러한 밤에 김준신이 태어났던 것이다. 김준신은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인물로 주목을 받더니 자랄 때도 남다른 점이 많았다.
김준신이 일곱 살 때 동리 아이들과 우물가에서 놀았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졌다. 아이들이 놀라서 어찌할 줄을 몰라 당황하고 있는 사이, 김준신이 급히 두레박줄을 가져와 우물에 내려 보냈다. 김준신의 재치로 물에 빠진 아이는 두레박줄을 잡고 무사히 구출되었다. 또 하루는 과수나무 숲에서 놀다가 과일을 따서 여러 아이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려 하던 때였다. 그런데 한 아이가 과일 하나를 먼저 집어 먹었다. 김준신은 과일을 먼저 먹은 아이를 엄하게 꾸짖고 매질로 벌을 주었다. 그 뒤로 아이들의 놀이에도 규율이 서게 되었다.
김준신은 상주진(尙州鎭)에서 순절을 하였는데 왜적이 김준신에게 당한 분풀이로 판곡리에 가서 김준신의 가족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김준신의 아내와 딸들은 왜적에게 당하느니 깨끗이 죽는 것이 낫다고 여기고 스스로 못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김준신의 아내와 딸들이 빠져 죽은 못이 판곡리의 낙화담(洛花潭)이다. 김준신의 가족이 자결을 할 때 김준신의 열네 살 된 아들 김백일(金百鎰)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임진왜란이 평정된 뒤에 김준신의 아들 김백일은 아버지가 전사한 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밤낮으로 울며 아버지의 유해를 찾고자 하였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아들 김백일은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었다. “아버님 돌아가신 자리이거든 제가 든 이 술잔을 엎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며 제사 잔을 들고 다녔다. 그렇게 상주 서문의 토성 근방에까지 갔을 때였다. 바람 한 점 없던 도중 갑자기 잔이 엎어졌다. 김백일은 곧장 잔이 엎어진 자리에서 흙을 팠다. 그리고 그 땅의 묘를 지키기 위하여 임시로 엮은 움막인 여막(廬幕)을 짓고 3년 동안 무덤을 돌봤다. 김백일이 삼년상을 지내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술잔이 엎어진 일을 기이하게 생각하면서도 하늘이 아버지의 충혼(忠魂)과 아들의 효성에 감동한 것이라 여겼다.
[모티프 분석]
「의사 김준신 부자」에 나타나는 주요 모티프는 ‘김준신 의사의 비범함’, ‘김준신 부녀의 열행(烈行)’, ‘김준신 아들의 효성’ 등이다. 「의사 김준신 부자」는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의사 김준신과 김준신 가족의 행적을 다루고 있는 설화이다. 김준신 의사가 어렸을 때 비범함을 보인 이야기, 임진왜란 때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낙화담에서 몸을 던진 김준신의 아내와 딸들의 이야기, 혼자 살아남은 아들 김백일이 효를 행하고자 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각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김준신과 관련된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어린 시절 김준신이 재치로 마을 아이들을 구하는 내용의 재치담, 인물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김준신의 아내와 딸들의 이야기에서 모녀는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낙화담에서 자결한 열녀이다.
마지막으로 아들 김백일의 이야기에서 김백일은 하늘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묘를 찾아 삼년상을 지킨 효자로 그려진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던 도중에 술잔이 엎어지는 기이한 일은 김백일의 효행이 하늘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사 김준신 부자」는 재치담이자 인물담이며, 열녀담, 효행담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는 설화이다. 「의사 김준신 부자」 설화를 통하여 상주 지역민들이 의사 김준신 가족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존경과 경외심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