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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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은정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11월 30일 - 「잉어 명당」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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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잉어 명당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 |
성격 | 풍수담 |
주요 등장 인물 | 지관|권민수의 자손들 |
모티프 유형 | 풍수|금기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에서 잉어 명당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잉어 명당」은 퇴재(退齋) 권민수(權敏手)[1466~1517]의 묘를 잉어 명당에 써서 후손들이 복을 받았다는 내용을 담은 풍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잉어 명당」은 2010년 11월 30일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에는 왕릉이 있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능골이 있다. 능골에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연산군(燕山君)[1476~1506] 대 대사헌을 지낸 퇴재 권민수의 묘가 바로 잉어 명당자리라고 한다. 학이라는 지관이 자손들에게 권민수의 묏자리를 잡아 주면서, “이곳은 명당이니 너무 깊이 파지 말고 묘를 쓰시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거듭 당부하기를 절대로 두 자[약 60㎝] 이상 파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권민수의 자손들은 관을 깊이 묻는 것이 자손 된 바른 도리라 여기고 지관의 당부를 무시한 채 깊이 파 내려갔다. 석 자쯤 팠을 때 갑자기 큰 잉어 한 마리가 튀어나와서 앞에 있는 연못으로 들어가 버렸다. 놀란 자손들이 지관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연못의 물을 퍼내고 잉어를 다시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잉어를 다시 찾을 수 없었고, 결국 그대로 장사를 지냈다. 후손들은 잉어가 이미 튀어 나갔기 때문에 명당으로서 가치가 상실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권민수의 아들뿐만 아니라 손자까지 줄곧 높은 관직에 올랐다.
해방이 되기 전 명당 앞의 잉어가 들어간 연못을 메웠더니 잉어 명당 앞쪽 들은 해마다 가뭄이 들어 농사가 흉년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연못이 있던 자리에 다시 조그만 웅덩이를 팠더니 이후부터는 농사가 잘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잉어 명당」의 주요 모티프는 ‘풍수’와 ‘금기’이다. 예로부터 잉어는 용의 변신 또는 용에 준하는 동물이라 여겨졌고 잉어가 있는 곳은 명당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잉어 명당」에서 지관은 잉어가 있는 곳을 명당으로 잡아 주면서 너무 깊이 파지 말라는 금기를 제시하였다. 일반적으로 풍수담에서 금기를 어기면 후손들이 망한다. 하지만 「잉어 명당」의 경우 후손들이 금기를 어겨 잉어가 묏자리 밖으로 나가긴 하였지만 앞의 연못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명당으로서 가치가 상실되지는 않은 듯하다. 잉어에게는 자유롭게 헤엄칠 물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해방 이후 잉어가 들어간 연못을 메우니 마을에 흉년이 들고, 다시 웅덩이를 파서 물이 들게 하니 농사가 잘되었다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