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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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은정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11월 30일 - 「장백사 터」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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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2년 12월 5일 - 「장백사 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한국민속문학사전』 설화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남장사 -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남장동 502] |
성격 | 폐사 유래담|사찰 연기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신도들|승려 |
모티프 유형 | 빈대로 인한 폐사|부처의 현몽을 통한 절터의 선정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남장사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장백사 터」는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에 있는 남장사(南長寺)의 유래와 관련한 전설이다. 남장사로 이름이 바뀌기 전 절의 이름은 장백사(長柏寺)였다. 「장백사 터」는 장백사가 터를 옮기고 이름을 남장사로 바꾸게 된 내력에 대하여 설명하는 사찰 전설이다. 빈대 때문에 절터를 옮기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부처의 현몽을 통하여 절터를 지정하는 이야기 또한 이름난 사찰의 연기 설화로 많이 전승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장백사 터」는 2010년 11월 30일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되어 있고, 2012년 12월 5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한국민속문학사전』 설화편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
어느 해 흉년이 들었을 때였다. 사람의 피를 먹고 사는 빈대까지 유난히 극성을 부렸다. 칠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신도들이 식량을 지고 험준한 산길을 올라 절에 당도하였다. 그런데 절의 승려가 코를 골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신도들은 감히 승려를 깨울 수 없어 지치고 허기진 몸으로 기둥에 기대앉아 있는데 허벅지가 따끔거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빈대가 튀고 있었다. 신도들은 짓궂은 마음이 들어 빈대를 잡아 승려 곁에 두고 돌아와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승려가 벌떡 일어나더니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변소로 달려갔다. 변소에서 돌아온 승려가 손을 닦고 식사 대접을 하자 신도들은 맛있게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신도들은 관솔불을 밝히고 빈대를 생포하여 이튿날 절에 갈 때 가지고 갔다. 이날은 승려가 자지 않고 기다리는 바람에 쓸모가 없게 된 빈대를 담 밖에 버렸다. 그때부터 절에 빈대가 많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듬해에는 빈대가 담을 쌓는다는 소문까지 나기 시작하였다.
몇 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승려가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고단하여 물 좋고 그늘 좋은 곳에서 쉬다가 잠시 잠이 들었다. 꿈속에 눈을 떠 보니 세상은 온통 백설로 덮여 있는데, 숲속의 법당에는 햇살이 환히 비치고 부처의 눈에서 나는 눈부신 빛으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때 부처가 “여기가 영원한 너의 집이니라” 하는 바람에 승려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깨었다. 그리고 지금 있는 자리가 영원히 부처를 모실 훌륭한 절터임을 깨닫고 절을 옮겨 지었다. 그렇게 새로 지은 절이 지금의 남장사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장백사 터」의 주요 모티프는 ‘빈대로 인한 폐사’와 ‘부처의 현몽을 통한 절터의 선정’이다. 「장백사 터」는 빈대로 인하여 절이 망하였음을 말하여 주는 폐사 유래담의 변이로 볼 수 있다. 장백사의 승려가 빈대 때문에 터를 옮겼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빈대가 많은 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심정은 문맥상 유추가 가능하다. 부처가 현몽하여 새로운 절터를 계시하자 터를 옮겨 절을 새로 짓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의 신이함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사찰의 신성성과 영험성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