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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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峰山 男妹堂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은정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11월 30일 - 「천봉산 남매당」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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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2년 12월 5일 - 「천봉산 남매당」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한국민속문학사전』 설화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남매당 - 경상북도 상주시 만산동 |
관련 지명 | 천봉산 -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동 산52-1 |
관련 지명 | 성황사 - 경상북도 상주시 만산4길 92[만산동 454] |
성격 | 계모 설화|사물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아버지|어머니|남매|새어머니|새어머니의 아들|나무꾼 |
모티프 유형 | 악한 계모와 전처 자식 간의 갈등|조력자를 통한 신원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천봉산 남매당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천봉산 남매당(天峰山 男妹堂)」은 계모와 전처 자식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계모 설화의 변이형이면서 남매당의 건립 경위를 설명하는 사물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천봉산 남매당」은 2010년 11월 30일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되어 있고, 2012년 12월 5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한국민속문학사전』 설화편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상주에 농사를 지으며 사는 한 가족이 있었다. 살림살이가 크게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은 화목하였고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효자, 효녀로 소문이 났다. 그런데 단란하였던 가정에 병마가 엄습하여 어머니가 앓아눕게 되었다. 이름도 모르는 병이라 약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어머니의 병은 점점 악화되었다. 어머니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남편과 자식들을 염려하였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몇 년이 지나자 아버지는 새 아내를 맞이하였다. 남매는 죽은 어머니를 생각하면 새어머니가 달갑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생각하여 아무런 불평 없이 새어머니에게도 효성을 다하였다. 그런데 새어머니는 성품이 그리 곱지 않았으며 데리고 온 아들도 한 명 있었다. 새어머니는 자기가 낳은 아들과 남편의 전처가 낳은 남매를 크게 차별하였지만 남매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어머니의 구박과 모함은 날이 갈수록 심하여져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버지에게 누가 미칠 것이라 생각한 남매는 집을 나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렇게 집을 나온 남매는 천봉산에 숨어 몇 년 동안 칡과 산나물 등을 먹고 지냈다. 남매의 옷은 해어질 대로 해어지고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극심한 영양실조에도 걸렸다. 혹독하게 추운 어느 겨울날,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던 남매는 끝내 얼어 죽고 말았다. 한 나무꾼이 남매를 발견하고 고이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무꾼의 꿈에 남매가 나타나 쉴 자리를 마련하여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러고는 “저희 소원을 하나만 더 들어주십시오. 저희는 원통하여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제발 저희 남매의 동상을 만들어 후세의 계모에게 깨우침을 주도록 하여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남매의 애절한 한을 마을 어른들에게 일일이 고하였다. 이에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집을 짓고 남매의 상을 만들었는데, 재원이 부족하여 동상(銅像) 대신 목상(木像)을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이 남매를 위하여 지은 집은 지금까지도 모정을 그리다 죽은 남매의 묘(廟)로 남아 있다. 남매당은 상주시 천봉산 성황당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모티프 분석]
「천봉산 남매당」의 주요 모티프는 ‘악한 계모와 전처 자식 간의 갈등’과 ‘조력자를 통한 신원(伸冤)’이다. 「천봉산 남매당」은 계모와 전처 자식 사이의 갈등을 다룬 설화인 계모담의 변이형이다. 계모담의 서사 구조는 친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계모의 영입과 계모로 인한 가족 구성원의 갈등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주로 계모와 전처 자식 간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계모의 지속적인 악행 때문에 가정에서 축출되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 전처 자식은 원조자나 배우자를 만나 시련을 극복하고 가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전처 자식의 귀환으로 계모의 악행이 드러나 계모는 응징되고 가정의 갈등은 마무리된다.
「천봉산 남매당」의 경우 자발적으로 집을 나간 전처 자식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은 후 나무꾼을 통하여 원통한 사연과 후세에 대한 경계를 전함으로써 어느 정도 원한을 풀기는 한다. 하지만 전처 자식이 생환하지도 않고 계모에 대한 응징도 없다는 점에서 행복한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대부분의 계모담이 그러하듯 「천봉산 남매당」에서도 아버지의 역할은 전혀 없는데, 재혼 가정의 문제를 계모와 전실 자식 사이의 문제만으로 축소시키는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