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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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현희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조선 후기 문신 이덕형의 애첩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허물없이 쫓겨난 애첩」은 조선 시대 문신인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과 영민한 애첩 사이에 있었던 일을 다룬 설화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끝나 나라를 재건하느라 바쁜 와중에 영민한 애첩에게 빠져 나랏일을 등한시할 것을 걱정한 이덕형이 애첩을 스스로 쫓아낸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허물없이 쫓겨난 애첩」은 조선 후기 문인인 서유영(徐有英)[1801~1874]이 1878년(고종 10)에 저술한 『금계필담(錦溪筆談)』에 수록되어 있다. 2010년 11월 30일에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
한음 이덕형에게 사랑스러운 첩이 있었다. 슬기롭고 재주와 인물이 출중하여 이덕형이 몹시 사랑하였다. 임진왜란 후 선조(宣祖)[1552~1608]가 막 창덕궁(昌德宮)으로 옮겨 정사를 볼 때였다. 나랏일이 매우 화급하여 영의정이었던 이덕형이 불시에 임금을 만날 일이 많았다. 그래서 이덕형은 대궐 문밖에 있는 작은 집을 세내어 첩을 두고 때때로 거기에서 지냈다.
정사가 늦게 끝난 어느 날이었다. 한여름인지라 몹시 갈증이 나서 첩의 집에 도착하였다. 이덕형이 미처 손짓으로 무엇을 달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첩이 소반에 제호탕(醍醐湯)을 들고 와 올렸다. 이덕형이 제호탕을 받고서 마시지도 않고 첩을 한동안 보다가 말하였다. “내 오늘부터 너를 버릴 것이니, 너는 이후로 어디든지 가도 좋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집을 나가 버렸다. 첩은 이덕형의 말을 듣고 까닭을 알 길이 없어 밤새 눈물로 지새다가 이덕형과 친한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을 떠올렸다.
첩은 날이 밝자 곧장 이항복을 찾아가 일의 전후를 아뢰었다. 하지만 첩의 말에 이항복도 도무지 이덕형의 뜻을 알 길이 없었다. 이항복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마침 이덕형이 찾아왔다. 이항복이 이덕형에게 첩에 대한 일을 물었다. “들으니 공께서 평일 첩을 귀여워하더니 졸지에 버렸다고 하니, 무슨 까닭입니까?” 이항복의 말에 이덕형이 웃으며 말하였다. “이는 남이 알 일은 아닙니다만, 제가 어제 대궐에 일이 있어 들었다 나오니 목이 몹시 말랐습니다. 제가 미처 입을 떼지 않고 손을 내밀어 보이자 첩이 제호탕을 가져와 바쳤으니 어찌 영민하지 않다 말하겠습니까? 제가 제호탕을 받으니 사랑하는 마음이 일고, 평소보다 첩이 더 고운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남자의 몸이 되어 틀림없이 여색에 미혹될 것이니 베푸는 마음과 정을 끊어 영영 버리는 게 낫겠다 여겼습니다. 첩에게 무슨 허물이 있겠습니까?” 이덕형의 말에 이항복이 혀를 차며 탄복하고, “공의 오늘의 일은 곧 평범한 사람은 하지 못할 일이며, 저 또한 믿지 못할 일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모티프 분석]
「허물없이 쫓겨난 애첩」의 주요 모티프는 ‘한음 이덕형’, ‘색(色)에 대한 경계’, ‘영민한 애첩’ 등이다. 한음 이덕형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다. 친구인 이항복과 함께 기지가 넘치고 장난이 심한 행동들을 일삼아 수많은 설화를 남긴 인물이다. 「허물없이 쫓겨난 애첩」은 이덕형과 관련한 설화이자, 이덕형이 어떤 성품을 지닌 인물인지 알 수 있는 일화가 담긴 인물담이다.
「허물없이 쫓겨난 애첩」에서 이덕형은 애첩에게 잘못은 없지만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하여 애첩을 쫓아냈다. 이덕형이 지닌 결단력이 잘 드러나는 내용이다. 이항복도 애첩을 끊어 낸 이덕형의 행동을 보고 평범한 사람은 하지 못할 일이라면서, 이덕형의 비범함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덕형처럼 나라를 위하여 사사로운 정을 끊어 낸 인물이 등장하는 설화로는 기생집으로 자신을 이끈 말의 목을 베었다는 신라 김유신(金庾信)[595~673]의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