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장군과 소천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1391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11월 30일 - 「호의장군과 소천교」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
관련 지명 소천교 -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하초리 지도보기
성격 인물담|유래담|대결담
주요 등장 인물 김수택|호랑이
모티프 유형 호랑이와의 대결|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옷|호랑이를 죽이고 얻은 보검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에서 호의장군 김수택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호의장군과 소천교」는 호의장군(虎儀將軍) 김수택과 관련하여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설화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에는 강릉 김씨(江陵 金氏) 집성촌이 있다. 강릉 김씨의 선대에 김수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종군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른 인물이다. 「호의장군과 소천교」는 김수택이 ‘호의장군’이라고 불린 유래가 담긴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호의장군과 소천교」는 2010년 11월 30일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김수택은 어려서부터 용맹하고 생각이 깊었다. 임진왜란이 나던 해 흉년을 만나서 기름진 곳으로 알려진 상주로 이사 올 때의 일이다. 김수택의 아버지는 한때 군수까지 지냈으나 관직을 물러났을 때는 빈손이었다. 이사를 오던 중 하루는 산속 빈집에서 묵었는데, 한밤중에 벼락 치는 소리가 있어 온 식구가 놀라 깨어 보니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문 앞에 와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온 식구가 사색이 되었는데, 김수택은 큰 다리미 돌과 쇠화로를 양손에 든 채 밖으로 내달아 일격에 호랑이를 죽였다. 죽은 호랑이는 몸집이 거대하였고 알 수 없는 보검이 몸에 박혀 있었다. 김수택이 호랑이 가죽을 벗겨 옷으로 삼으니 흡사 호랑이가 선 것 같았으며 보검을 얻었으니 기이한 일이었다.

1592년 음력 5월에야 임진왜란이 난 것을 안 김수택은 부모에게 하직하고 구국의 길에 올랐다. 김수택이 호랑이 가죽을 입은 채 보검을 휘두르며 왜군을 습격하니 왜군이 ‘호의장군’이라고 하며 몹시 두려워하였다. 호의장군의 눈부신 활약은 멀리 부산 동래까지 알려졌다.

호의장군 김수택은 전쟁이 끝나자 공을 내세우지 않고 상주로 돌아와 95세까지 살았다. 김수택은 상주를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 그중에서도 상주읍과 청리, 공성을 잇는 도로가 소호천으로 갈라져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인근 부락민과 협력하여 큰 무지개형 돌다리를 놓았다. 김수택이 주민들과 놓은 다리가 옛날 소천교(蘇川橋)이다. 소천교 덕분에 상주 지역에서는 장마에도 인명 피해를 덜 수 있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호의장군과 소천교」의 주요 모티프는 ‘호랑이와의 대결’,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옷’, ‘호랑이를 죽이고 얻은 보검’ 등이다. 「호의장군과 소천교」임진왜란에서 큰 공을 세운 김수택이라는 인물이 큰 호랑이를 만나 가죽과 보검을 얻은 이야기이다. 「호의장군과 소천교」는 김수택의 영웅적 활약을 담고 있는 인물담이자, ‘호의장군’이라고 불리게 된 유래를 설명하는 유래담이다.

또한 「호의장군과 소천교」에서는 상주시 청리면 하초리에 소천교가 만들어진 유래가 담긴 유래담이기도 하다. 소천교는 상주 지역을 위하여 김수택이 놓은 다리이다. 소천교 이야기를 통하여 상주 지역과 상주 지역민들을 생각하는 김수택의 애향심과 훌륭한 인성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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