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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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利安面 小岩里 萬歲示威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준호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9년 3월 29일 - 이안면 소암리 만세시위운동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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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19년 3월 29일 - 이안면 소암리 만세시위운동 종결 |
전개 시기/일시 | 1919년 5월 1일 - 이안면 소암리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채세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형 선고 |
전개 시기/일시 | 1919년 5월 1일 - 이안면 소암리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채순만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 형 선고 |
발생|시작 장소 | 소암리 남쪽 제방 -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소암리 |
종결 장소 | 소암리 남쪽 제방 -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소암리 |
성격 | 독립운동 |
관련 인물/단체 | 채세현|채순만 |
[정의]
1919년 3월 29일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소암리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 대표 29명은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2시 30분경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3·1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상북도 상주에서는 3월 23일 상주 장터에서 한암회(韓岩回)의 주도로 첫 만세운동이 전개되었고, 이어 3월 29일에는 이안면 소암리에서, 그리고 4월 8일과 9일에는 화북면 문장산(文藏山)과 운흥리에서 각각 일어났다.
[경과]
이안면 소암리 만세시위운동(利安面 小岩里 萬歲示威運動)은 1919년 3월 29일 일어났다. 주도자는 소암리의 채세현(蔡世鉉)과 채순만(蔡淳萬) 등이었다. 채세현은 소암리 동성마을의 유지로서 소암리의 채씨 청년 20여 명을 이끌고, 3월 29일 밤 10시경 마을 남쪽의 제방 위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여러 차례 부른 뒤 스스로 해산하였다. 그런데 이 사실이 일제 경찰에게 알려져 채세현과 채순만이 붙잡혔다.
[결과]
주도자 채세현과 채순만은 1919년 5월 1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채세현은 징역 10월 형을, 채순만은 징역 8월 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후 채세현은 서울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19년 12월 25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의의와 평가]
이안면 소암리 만세시위운동은 상주 지역에서 일어난 두 번째 만세시위운동이다. 특히 소암리의 인천 채씨 문중이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