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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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知復 |
영어공식명칭 | Kim Jibok |
이칭/별칭 | 무회(無悔),수초(守初),우연(愚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출신의 문신.
[가계]
김지복(金知復)[1568~1635]의 본관은 영동(永同)[영산(永山)]이며, 자는 무회(無悔)·수초(守初), 호는 우연(愚淵)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장사랑 김자(金滋)이고, 할아버지는 김언건(金彦健)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정 김각(金覺)이고, 어머니는 성균관사성 김충(金冲)의 딸 상산 김씨(商山 金氏)이다. 부인은 직장 전개(全漑)의 딸 관산 전씨(管山 全氏)이다. 형은 김지백(金知白)·김지절(金知節)·김지덕(金知德)이다.
[활동 사항]
김지복은 1568년(선조 1) 상주에서 태어났다. 류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이준(李埈)·정경세(鄭經世) 등과 교유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김각, 형 김지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612년(광해군 4)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권력을 잡고 있던 이이첨(李爾瞻)의 처벌을 청원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이후 상주로 낙향하여 은둔하였다.
김지복은 1623년(인조 원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물러난 후 경안도찰방에 제수되었고, 1624년 이괄(李适)이 난이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이준과 함께 상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괄의 난이 진압된 후 치러진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여 1625년 성균관박사·형조좌랑, 1627년 예조좌랑, 1628년 사헌부장령을 역임하였다. 1635년 밀양부사에 이어 성균관사예에 제수되었지만 병환으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지복의 저술로는 문집인 『우연집(愚淵集)』 2권 1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