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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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漢朝 |
영어공식명칭 | Nam Hanjo |
이칭/별칭 | 종백(宗伯),손재(損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744년 - 남한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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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86년 - 남한조 옥하정 건립 |
활동 시기/일시 | 1792년 - 남한조 도산서원 응제시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809년 - 남한조 사망 |
출생지 | 경상도 상주목 두릉리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두릉리 |
수학|강학지 | 선유동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동 완장리 |
묘소|단소 | 남한조 묘소 -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개곡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의령(宜寧)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출신의 학자.
[가계]
남한조(南漢朝)[1744~1809]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종백(宗伯), 호는 손재(損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남도훤(南圖翧)이고, 할아버지는 남정삼(南鼎三)이다. 아버지는 남필용(南必容)이고, 어머니는 참봉 김경온(金景溫)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다. 부인은 정언의(鄭彥儀)의 딸 동래 정씨(東萊 鄭氏)이다.
[활동 사항]
남한조는 1744년(영조 20) 경상도 상주목 두릉리(杜陵里)[현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두릉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외삼촌 김진동(金鎭東)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성장하여서는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또한 광주(廣州)의 안정복(安鼎福)을 찾아가 수학하였고, 정종로(鄭宗魯)·이완(李埦)·이우(李㙖)·류범휴(柳範休)·황용한(黃龍漢) 등과 교유하였다.
남한조는 1786년(정조 10) 선유동(仙遊洞)[현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동 완장리]에 옥하정(玉霞亭)과 손재(損齋)를 짓고 강학하였다. 1792년에는 예안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 치른 응제시(應製詩)에 합격하였으며, 사도세자의 신원을 청원하는 영남만인소에도 참여하였다. 남한조는 여러 차례 관찰사와 암행어사의 천거를 받았지만 끝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후학 양성에 힘쓰다가 1809년(순조 9)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남한조의 저술로는 문집인 『손재집(損齋集)』 15권 8책이 전한다. 수록된 시문 중에는 「자경11절(自警十一絶)」과 「차이제가운(次李際可韻)」과 같은 도학시(道學詩)가 있으며, 은둔하던 선유동과 유람지인 금강산·속리산·관동팔경 등의 명승을 노래한 작품이 많다. 또한 상주 지역 인근의 퇴계학파와 남인계 인사들에게 보낸 편지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 남한조의 이러한 편지들은 당시 상주 지역 퇴계학맥의 경향과 남인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묘소]
남한조의 묘소는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개곡리에 이장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