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낙동강 물길 따라 나루터 기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006
영어공식명칭 Traveling to The Ferry Along The Nakdong River Waterway in Sangju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진원형

[정의]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낙동강 나루의 역사.

[옛 물류와 여객 수송의 중심, 상주 낙동강 나루]

나루는 강이나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일정한 장소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한자로는 도(渡)·진(津) 또는 좀 큰 것을 포(浦)라고 한다. 나루는 교통로와 연결되어 발달한다. 큰 강이 흘러 육로를 차단하는 경우 하천을 횡단하여 육로를 연결하는 강나루가 필요하다. 또한, 하구에서 수로를 따라 가항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에도 나루가 중요한데, 하천 양쪽 기슭의 선착장에 배를 정박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강나루는 하천을 횡단하여 민간의 이동뿐만 아니라, 역참(驛站)과 함께 중앙의 명령을 지방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강을 거슬러 올라와 장사를 하거나, 지방 각지의 조세곡을 중앙으로 집결시키는 공공 교통로 역할도 담당하였다. 조선 시대 낙동강에는 삼랑진까지 큰 배가 다닐 수 있었고, 보통 배는 사문진까지, 작은 배의 뱃길은 상주까지였다고 한다. 낙동강에는 관수 물자나 세곡을 실은 배들은 물론이고, 남해안의 김해나 구포 쪽에서 소금, 생선, 생필품을 실은 배들이 상주까지 올라와 나루에 시장이 서기도 하였다. 제법 큰 짐배들이 운항할 수 있는 거리가 ‘낙동강 700리’[약 275㎞]가 시작되는 퇴강리의 물미나루[퇴강진]까지였다.

상주는 함창읍, 사벌국면, 중동면, 도남동, 낙동면 등 5개 읍면동 지역으로 낙동강 본류가 흐른다. 문헌에 따라 나루의 수는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상주시에는 가장 북쪽 사벌국면 퇴강리의 물미나루에서 남쪽으로는 영남대로를 잇는 낙동강의 가장 큰 나루인 낙동면 낙동나루까지 낙동강 본류에만 크고 작은 12개 정도의 나루가 있었다. 낙동강 본류에 자리 잡은 고을 중 상주보다 나루가 많은 곳은 없었다고 한다.

[상주의 낙동강 나루터를 찾아서]

상주에는 사벌국면과 예천군 풍양면을 잇는 물미나루, 삼탄나루, 운성나루, 사벌국면중동면을 잇는 역골나루, 중동면도남동을 잇는 회상나루, 대비나루, 중동면낙동면을 잇는 강창나루, 대바우나루, 토진나루, 물댕이나루, 그리고 낙동면과 의성군 단밀면을 잇는 뒷디미나루, 낙동나루 등 12개 나루가 있었다.

물미나루는 사벌국면 퇴강리 광대정마을에서 예천군 풍양면 와룡리 용두정마을을 잇는 나루이다. 광대정나루나 퇴강진(退江津)으로도 불렀다. 물미나루 위쪽은 영강낙동강 본류로 유입되는 지점으로, ‘낙동강 700리’가 시작되며 상주시 사벌국면과 문경시, 예천군 등 3개 시군의 경계와 접하고 있다. 물미나루는 조선 시대 세곡선이 닿던 나라의 주요한 나루터였으며, 생선과 소금 배의 집결지였다.

삼탄나루는 광대정의 물미나루에서 용두정마을 아래쪽인 예천군 풍양면 낙상리 삼탄마을로 가는 뱃길이다. 예천과 상주, 문경을 이어 주는 중요한 나루였으며, 조선 시대 다인 수산역에서 함창 덕통역을 가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삼탄나루를 건너야 하였고, 광복 후까지도 의성 안계 쪽으로 오가는 자동차를 실어 나르는 유일한 나루였다고 한다. 또한, 낙동강 하구에서 소금과 생선, 생필품을 실은 배가 들어오면 나루에는 상주, 문경, 풍양 사람들이 모여들어 큰 장이 열렸다고 한다.

운성나루는 사벌국면 매호리 나룻가에서 예천 풍양면 낙상리 들마를 잇는 나루였으며, 뱃가나루라고도 불렀다. 낙동강 물길 따라 올라온 세곡과 소금을 실은 배가 다니던 곳이었고, 나루터 장시와 주막촌이 형성되었던 곳이라 전한다. 광복 후에도 수십 년 동안 풍양장날이나 농사철에 장꾼이나 농부 등을 실은 배가 다녔다 한다.

역골나루는 사벌국면 매협리 역골[역곡(力谷)]마을중동면 회상리 매골마을[응동(鷹洞)]을 잇는 뱃길이다. 회상리 사람들이 사벌장이나 상주장을 가거나 농사철에 주로 내왕하던 곳이며, 옛날 역골나루에서는 소금과 쌀 등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한다. 주로 배를 역골에서 운영하였기에 역골나루라 하였는데 매협나루, 매골나루라 부르기도 하였다.

회상나루중동면 회상리 회골도남동을 잇는 나루였다. 조선 시대 상주도호부에서 의성의 다인과 예천, 안동으로 통하던 역로를 연결하던 중요한 통로였다. 목재나 농산물을 운송하였으며, 경천대 주변에 물고기가 많아 고깃배들도 드나들었고 상주장이나 사벌장이 서는 날에는 장꾼들로 붐비던 나루였다. 회골나루, 회촌진, 회동진으로도 불렀다.

대비나루는 중동면 오상리 대비[비란]마을도남동을 잇는 규모가 큰 나루였다고 한다. 대비진, 비란진(飛鸞津)이라고도 하였다. 병성천낙동강이 합류하는 바로 위쪽이라 예전에는 도남장시가 들어서는 등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부산에서 소금 배가 올라와 주변에는 취락과 주막거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강창나루, 강창진은 중동면 죽암리 강창마을낙동면 신상리 주막걸을 잇는 나루였다. 강 연안 중동 쪽에 관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상주 읍내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남해에서 소금과 해산물, 생필품을 실은 배가 들어와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까지도 성황을 이루었으며, 낙동장이나 상주 읍내로 다니던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었다.

대바우나루는 낙동나루와 함께 오래된 나루였다. 중동면 죽암리 원죽암[대바우]마을낙동면 분황리 분황마을을 잇는 나루였으며, 대바위나루, 죽암진(竹巖津)으로도 불렸다. 의성 주민과 중동의 아래쪽 주민들이 토진나루나 강창나루를 이용하지 않고 상주 읍내로 통행하는 지름길이었다.

토진(兎津) 또는 토진나루는 중동면 신암리 토진마을낙동면 물량리 주막걸을 잇는 나루였다. 도로교통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때 하상(河上) 무역의 중심지로서 해산물과 전곡이 교환되는 시장이 번성하였던 곳이다. 강의 수심이 깊어 포구로 적당하여 상주에서 예천과 의성으로 연결되는 무역항으로서 염창이 있었으며, 토진나루를 지나면 문경새재로 가는 지름길이라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물댕이나루는 중동면 우물리 작은마을에서 낙동면 물량리 탑말개마을을 잇는 나루였다. 말지천과 토진나루를 이용하지 않고 상주 읍내로 이동하기에는 훨씬 지름길이었다. 무댕이 또는 작은마나루라고도 하였으며, 중동의 낙동강 구간 중 가장 절경을 이룬다.

뒷디미나루는 낙동면 낙동리 원마[뒷디미]에서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 밤실·송실을 잇는 나루였다. 딧디미나루, 후진나루라 부르기도 하는데, 아래쪽에 있는 낙동나루를 낙동앞나루, 뒷디미나루를 낙동뒷나루라 하였다. 상주 낙동장이나 의성 안계장이 열리면 나루터는 장꾼들로 붐볐고, 남해에서 장삿배가 올라오면 생송리 일대에 사람들이 모여 번개장이 서기도 하였다.

낙동나루상주시 낙동면 낙동리 진두마을과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 역말을 연결하던 나루였다. 고려 시대 상주도, 조선 시대 영남대로의 유곡도 등 주요 역로(驛路)가 지나던 곳이었다. 고려 시대부터 낙동강 수로를 이용한 세곡선의 집결지이기도 하였다. 남해에서 생산한 소금과 각종 해산물도 낙동나루에 모였다가 다른 지방으로 공급되는 등 관수 물자 운송과 민간의 물자 유통에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낙동강의 나루 중에서 가장 크고 번창하였다. 낙동진(洛東津), 관수진(觀水津), 낙정(洛井)나루, 낙정진으로도 불렀다.

[도로와 교량이 나룻길을 대신하다]

20세기에 들어와 전국적으로 철도망이 구축되고, 도로가 개설되어 강의 상하류를 따라 물자가 운송되던 낙동강 물길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나루터에 교량이 가설되어 강 양쪽 기슭을 오가던 나룻배도 사라졌다.

낙동강에는 1987년 물미나루 위쪽으로 총길이 300m, 왕복 2차로의 영풍교가 준공되었으며, 1995년 운성나루터에는 총길이 612m, 왕복 2차로의 상풍교가 준공되어 인근의 물미나루, 삼탄나루와 함께 운성나루는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1980년대까지도 선창가에 주막이 있었던 회상나루터에는 2007년 총길이 330m, 왕복 2차로의 경천교가 가설되었으며, 아래쪽 대비나루터는 2012년 상주보가 준공되어 낙동강 자전거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강창나루는 1992년 총길이 375m, 왕복 2차로의 강창교[잠수교]가 놓이기 전인 1980년대까지도 소를 싣고 다니거나 오토바이와 사람이 함께 건너기도 하였고, 중동 강가 백사장에서 목선을 건조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한다. 토진나루터에는 총길이 450m, 왕복 2차로의 중동교가 1982년 가설되어, 토진나루터에 열렸던 토진장[신암장]은 1990년 폐지되었다. 최근까지 남아 있던 시장의 장옥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낙동면과 의성 단밀면을 잇는 뒷디미나루터에는 2012년 낙단보가 준공되어 낙동강 자전거도로가 통과하며, 낙동나루터는 1986년 총길이 434m, 왕복 2차로의 낙단교가 가설되면서 나루의 기능은 막을 내렸다. 낙동나루는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후까지 생필품을 실은 장삿배의 왕래가 계속되었고, 평저선인 나룻배가 다녔으며 통행량이 많았던 곳이다. 따라서, 주민 숙원 사업으로 1967년 ‘낙단교 가설 기공식’을 하였으나 이후 교량 건설이 중단되었고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공약 사업으로 등장하여 선거다리라고 부르다 1986년에야 교량이 완공되었다. 낙단교와 인접하여 아래쪽으로 2003년 낙단대교, 2017년 상주영천고속도로낙동강대교가 가설되었다.

[나루터의 변신, 관광 거점으로]

상주 낙동강 나루터는 낙동강 굽이굽이 간직한 빼어난 풍광에 나루터의 역사 이야기가 더하여져 새로운 관광 명소로 변모하고 있다. 2012년 개통된 낙동강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면 상주 낙동강 나루터와 주변 관광지를 빠짐없이 둘러볼 수 있다.

국토종주자전거길 가운데 낙동강 강변을 통과하는 낙동강자전거길은 안동댐에서 상주시를 거쳐 낙동강 하굿둑까지 연결된다. 예천군 풍양면 강변의 물미나루터와 삼탄나루터를 따라 내려오면 운성나루터 상풍교에서 상주시 구간이 시작된다. 상풍교에서 경천대국민관광지, 회상나루터·경천교를 지나 도남서원과 경천섬에 이르고, 대비나루터 상주보를 통과한 후 강창나루터와 토진나루터·중동교를 거쳐 뒷디미나루터 낙단보와 낙동나루터에 도착하게 된다.

회상나루터 인근의 사벌국면 경천대낙동강 물길 중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칭송을 받아 온 곳이다. 경천대국민관광지가 조성되어 다양한 놀이 시설이 구비되어 있고, 밀리터리테마파크에서는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경천대와 인접하여서 경천교 입구에 상주 자전거박물관이 있다.

경천교 남쪽 중동면 회상리낙동강 변에는 객주촌, 주막촌 등의 드라마 「상도」 세트장, 낙동강문학관, 경천섬 수상 탐방로, 철새 전망대 등이 들어선 회상나루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 회상나루관광지 맞은편 도남동에는 수상 자전거, 바나나 보트, 카약, 카누 등을 즐길 수 있는 상주보수상레저센터와 오토캠핑 60면, 일반 캠핑 20면, 방갈로 6동 등을 갖춘 상주보오토캠핑장이 있어 자전거, 서바이벌, 수상레저로 이어지는 종합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상주보오토캠핑장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에서는 생물 다양성과 낙동강 생태계 등과 관련된 전시 시설을 관람할 수 있다.

경천섬을 중심으로 상주 자전거박물관에서 상주보 구간의 자전거길은 국토종주자전거길 중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으로 선정되었다. 낙동강 상주보 상류에 있는 경천섬은 섬을 둘러싸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비봉산 절벽이 어우러져 비경을 자아내는 생태공원이다. 회상나루관광지와 경천섬은 보도 현수교로 연결된다.

경천섬을 지나 중동면 죽암리에 강창나루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아래쪽 낙동면 낙동리의 낙단보에 도착하면 낙단보수상레저센터가 있어 수상스키, 모터보트, 제트스키 등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다. 또한, 낙단보 옆 낙동강 변에 건립된 낙동강역사이야기관에서는 나룻배 체험 등 낙동강과 관련된 다양한 역사 문화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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