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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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幹會 尙州支會 |
이칭/별칭 | 상주신간지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진희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 있던 신간회 산하 지회.
[개설]
신간회 상주지회(新幹會 尙州支會)는 경상북도의 20개 신간회 지회 중 하나로 상주 지역의 민족 독립운동을 위하여 설립된 단체이다.
신간회(新幹會)는 1927년 2월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창립한 민족협동전선이었다. 신간회는 1927년 2월부터 1931년 5월까지 전국적으로 120~150여 개의 지회를 가지고 있었으며, 회원 수만 2만~4만 명에 이르는 일제 강점기 최대 규모의 반일 사회 운동 단체였다.
경상북도에서는 1927년 6월 신간회 김천지회 설립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지회 설립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당시 경상북도에서는 울릉군을 제외한 총 23개 군 가운데 21개 군에서 20개 지회가 설립되었는데, 신간회 상주지회는 1927년 9월 4일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
신간회 상주지회는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민족 독립운동을 실천하여 나갈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27년 가을부터 일제는 신간회를 탄압하였다. 초기 탄압은 순사나 관리가 신간회 입회를 방해하거나 탈퇴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나타났고, 도청의 학무과가 나서서 교원들에게 신간회 가입을 불허하고 가입자의 탈퇴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다.
1928년 7월 조선공산당 및 고려공산청년회 조직을 적발하면서 상주에서는 강훈이 검거되었다. 또한 1930년 7월에는 이른바 ‘경북공산당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상주에서는 신봉일이 검거되었다. 당시 검거된 신간회 회원들은 지회 설립과 활동에서 지도자급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계열 인사들의 검거로 신간회 상주지회의 활동은 침체되었다. 1930년 12월부터는 지회 차원의 신간회 해소가 논의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신간회 상주지회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신간회 상주지회에서는 1928년 4월 상주군수가 상주의 조선인 면장과 부면장에게 사직할 것을 강요하자, 지회장 박정현(朴正鉉)과 간부 이민한(李玟漢) 등이 앞장서서 사직 권고는 이유가 없다는 벽보를 읍내에 붙이고, 면민 대회를 열어 군수의 조치를 규탄하고자 하였다. 또한 향교 철폐, 향교 재산 처리권 획득, 『영남일보』 폐간, 전매 제도 및 유도진흥회(儒道振興會) 처리 등을 결의하였다. 다만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관련 사항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신간회 상주지회는 1927년 9월 4일 상주청년동맹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계열이 주도하였다. 상주 지역은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미약하여 사회주의자들이 지도하는 상주청년동맹이 중심이 되어 지회를 설립·운영을 주도하였다. 상주를 비롯하여 인근의 예천·봉화·영천·영양·영덕의 지회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