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648
한자 尙州 悟昨堂
영어공식명칭 Ohjakdang House, Sangju
이칭/별칭 구당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선상서로 1975[승곡리 131-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63년연표보기 - 상주 오작당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781년 - 상주 오작당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8년 - 상주 오작당 사랑채 기단 및 번와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1년 - 상주 오작당 사랑채 담장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2년 - 상주 오작당 안채 기단 및 번와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3년~1994년 - 상주 오작당 사주문 건립 및 행랑채 복원
문화유산 지정 일시 1982년 2월 24일연표보기 - 상주 오작당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32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상주 오작당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상주 오작당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상주 오작당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선상서로 1975[승곡리 131-2]지도보기
성격 고택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5칸[안채]|7칸[사랑채]|1칸[가묘]
측면 칸수 2칸[안채]|2칸[사랑채]|1칸[가묘]
문화유산 지정 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고택.

[개설]

상주 오작당(尙州 悟昨堂)은 구당(舊堂) 조목수(趙沐洙)[1736~1807]의 호를 따서 ‘구당’이라고도 한다. 상주 양진당을 건립한 문신 조정(趙靖)[1555~1636]의 둘째 아들의 후손들이 거주한 집이다. 문중 자료를 종합하면, 조정의 둘째 아들 조영원(趙榮遠)[1577~1640]이 혼인한 후 상주 양진당과 인접한 마을로 분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영원의 손자 조대윤(趙大胤)이 아버지 조릉(趙稜)[1607~1683]의 명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터를 잡고 1663년 오작당을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상주 오작당은 1982년 2월 24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변경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상주 오작당은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선상서로 1975[승곡리 131-2]에 있다. 갑장산의 맥을 잇는 야산이 배후에 있고, 앞으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장천과 주변을 부감하는 배산임수의 형국에 동향으로 입지한다. 승곡리풍양 조씨의 집성촌으로 주변에는 상주 양진당, 상주 의암고택, 상주 승곡리 추원당, 상주 용산정사, 옥류정 등이 있다.

[변천]

상주 오작당풍양 조씨 입재공파 파시조 조대윤이 아버지 조릉의 명에 따라 1663년 40여 칸의 건물을 처음 건립하였다. 조대윤의 증손자 조석목(趙錫穆)[1726~1793]의 지원으로 1781년 중수하였다. 1988년 사랑채 기단 및 번와 보수가 있었으며 1991년 담장을 보수하였다. 1992년 안채 기단 및 번와 보수가 있었다. 1993년과 1994년에는 사주문을 건립하고 행랑채를 복원하였다.

[형태]

상주 오작당 건물 구성은 크게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가묘, 사당 등으로 일곽을 이룬 한식 목조기와집이다. 안채[‘一’자형]를 중심으로 앞쪽으로 사랑채[‘ㄱ’자형]가 있고, 사랑채 왼쪽으로는 대문칸[‘一’자형]을 사이에 두고 행랑채[‘一’자형]가 연결되어 있다. 아울러 안채 뒤편 담장 곁에는 조정의 불천위사당, 오작당 일곽 담장 너머 서쪽에는 구당 조목수 사당이 각기 있다. 지세로 인하여 각 채들은 안채를 중심으로 모두 동향이다.

[현황]

상주 오작당의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 자형 겹집 평면을 취하고 있으며, 왼쪽부터 부엌과 안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엌 상부에는 2층 구조로 수장 공간인 다락이 설치되어 있다. 구조는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지붕 가구를 받았는데, 기둥의 모접이 방식과 기둥 상부에 결구한 보아지를 파련각으로 초각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부엌 정면에 단 쌍여닫이 띠장널문은 문둔테와 인방이 하나의 부재로 만들어져 있으며, 부엌 2층 다락의 정면과 측면에 설치한 살창의 광창과 대청마루 쪽에 단 살창은 고식의 수법으로 보인다. 부엌과 건넌방 앞쪽의 기단 상부에는 처마도리 뺄목을 받치는 보조기둥이 세워져 있다. 지붕 가구는 안방과 대청은 5량가이고, 부엌과 건넌방 전면은 3량가이다. 안채 배면 쪽에는 기단 안쪽에 현대적 시설의 보일러실과 화장실 등의 공간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지붕 형태로 보아 본채와 좌우 측면에 익랑채가 연결된 독특한 구성이다.

상주 오작당의 사랑채는 현재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ㄱ’ 자형이나, 과거 자료 등에는 丁자형이었다고 한다. 평면은 왼쪽부터 사랑방 2칸과 사랑마루 2칸, 뒤편으로 각각 1칸의 책방과 1칸 화장실이 있다. 사랑방 2칸 중 왼쪽 1칸은 본래 대문간이었던 것을 1994년 행랭채를 현재와 같이 사랑채 옆으로 달아 붙이면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사랑마루 정면에는 사분합들문을 달았고, 천정은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천정이다. 행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一’ 자형 평면으로 왼쪽부터 방 2칸, 대문간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2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행랑채는 광과 헛간의 용도로 사용되었던 초가를 함석으로 변형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994년 복원 공사를 통하여 한식목구조에 기와집으로 개조하였다. 검간 조정의 불천위사당은 정면 1칸, 측면 1.5칸 규모의 민도리 형식에 맞배 기와집이다. 조목수 사당은 출입문과 사당, 담장으로 일곽을 구성하였고, 사당은 정면과 측면이 각기 1칸씩에 직절익공 형식의 맞배 기와집이다.

[의의와 평가]

상주 오작당은 규모 및 구조 형태의 시기적 변화와 변형이 있었으나 조선 시대 경상북도 상주 지역 또는 풍양 조씨 종가의 건축적 특성을 살필 수 있는 주거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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