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성산산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676
한자 尙州 城山山城
영어공식명칭 Seongsan Fortress, Sangj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하송4길 151-42[하송리 산42]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창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618년 - 상주 성산산성 보수
현 소재지 상주 성산산성 -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하송4길 151-42[하송리 산42]지도보기
성격 산성
크기(높이,길이,둘레) 3,340m 또는 2,980m[둘레]|1,500m[남북 길이]|약 120~150m[동서 너비]|2~5m[높이]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화남면 동관리 사이 청계산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개설]

상주 성산산성(尙州 城山山城)은 ‘견훤성’, ‘대궐터’ 등으로 불리며,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화남면 동관리 사이 청계산에 있다.

[위치]

상주 성산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하송4길 151-42[하송리 산42]에 있다. 하송리 청계산에 있는 극락정사의 북서쪽 일대에 있다. 전근대의 상주시 화서면에서 충청북도 괴산군 송면을 거쳐 충주로 연결되는 지름길과 상주시에서 보은군으로 연결되는 적암대로의 요충지에 있다.

[형태]

상주 성산산성은 테뫼식 토성과 석축의 혼합성 또는 돌로 성을 쌓고 내탁(內托)한 토석혼축성이다. 규모는 둘레 3,340m 또는 2,980m이고, 남북 길이 1,500m, 동서 너비 약 120~150m, 높이 2~5m이다.

[변천]

1617년 편찬된 『상산지(商山誌)』 산성에 “성산, 주의 서쪽 40리에 있고, 1618년 목사 정호선이 중수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우복집』 권14, 잡저 「성산산성수곡문(城山山城收穀文)」[1618년경]에 따르면, “고려 말기에 함창의 승(僧) 홍지(弘志)가 이 산에 성을 쌓아 홍건적을 격파하는 데 공을 세운 사실이 국사에 실려 있다”라고 하였는데, 실제 『고려사』 권24, 1254년(고종 41) 10월 19일 기사에는 황령사(黃嶺寺)의 승려 홍지가 상주산성(尙州山城)[현 금돌성 추정]에서 몽골군을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1749년 편찬된 『상산지』 창고조에 “산성창, 성에 중화 5면 8부의 민곡을 보관한다”, 성지(城地)에 “주의 서쪽 40리에 있다. 전에 청계산 위에 창사(倉舍)가 있었는데 1727년(영조 3) 화재로 소실되어 3년 후에 청계사로 옮겨 세우고 수구에 성첩을 쌓았다. ····· 일명 견훤성이라고도 하며, 주위는 5,350보이다”라고 하였다.

1757년 편찬된 『여지도서』 관애(關隘)에 “주의 서쪽 50리에 있는데 옛날 견훤이 쌓은 것이다. 스스로 주저앉아 폐허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라고 하였다. 1786년 편찬된 『상산지』 병오초책(丙午草冊) 관애(關隘)에 “성안에 견훤창을 설치하였다. 또 별관(別館)을 두고 승장(僧將)에게 지키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1929년 편찬된 『상산지』 명신(名臣) 편에는 “홍종무(洪鍾茂) ····· 1855년 ····· 견훤창과 청류관(淸流關)을 중수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상주 성산산성에 대한 발굴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내성에는 대궐지, 저수지 3개소, 견훤창지, 사대문지, 망대 7~14개소 등이 확인된다. 외성[또는 차단성]에는 산성 오른쪽의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송천을 횡단하는 석축 성벽 약 130m가 잔존한다. 성내에서는 어골문과 사선문의 기와류와 연질과 경질의 토기편이 채집된다.

[현황]

상주 성산산성 성내 견훤창지에 현재의 극락정사가 들어선 것으로 추정되며, 극락정사의 진입로와 송천의 도로 개설로 성벽의 일부가 절단된 상태이다. 송천에 있는 석축과 수문은 홍수로 유실되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상주 성산산성은 1618년 보수 이후 상주목의 관애[관문 또는 요새]로 활용되다가 19세기 중후반부터 산성의 중요성과 활용도가 상실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초축 시기와 축성 방법 등 산성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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