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685 |
---|---|
한자 | 尙州鄕校 大成殿 東廡 西廡 |
영어공식명칭 | Daeseongjeon Shrine, Dongmu East Shrine and Seomu West Shrine of Sangju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2길 99[신봉동 20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0세기경 - 상주향교 건립 |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486년~1487년 - 상주향교 대성전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12년 - 상주향교 동무·서무 건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31년 - 상주향교 대성전 재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59년 - 상주향교 대성전 수리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6년 - 상주향교 대성전 중창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1982년 2월 24일 - 상주향교 대성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5호 지정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2020년 12월 28일 - 상주향교 대성전·동무·서무 보물 제2096호 지정 |
문화유산 해지 일시 | 2021년 1월 7일 - 상주향교 대성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지정 해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향교 대성전·동무·서무 보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상주향교 대성전·동무·서무 -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2길 99[신봉동 203-1] |
성격 | 전통 건축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대성전]|겹처마맞배지붕[동무]|겹처마맞배지붕[서무] |
정면 칸수 | 5칸[대성전]|10칸[동무]|10칸[서무] |
측면 칸수 | 3칸[대성전]|2칸[동무]|2칸[서무] |
소유자 | 경상북도향교재단 |
관리자 | 상주향교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동 상주향교에 있는 조선 후기 건물.
[개설]
상주향교(尙州鄕校)는 고려 시대 건립한 이래 전통 시대 상주목(尙州牧)의 공립 교육 기관으로 교육과 제향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대성전(大成殿) 및 동무·서무는 향교에서 공자의 위패를 봉안하고 향사를 지내는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읍격에 따라 향교의 격도 달랐는데, 상주향교의 경우 대설위(大設位)로 성균관(成均館)의 문묘(文廟)와 동일하게 공자를 정위(正位)로 하고, 4성(四聖)과 공문(孔門) 10철(哲), 송조(宋朝) 6현(賢), 중국 명현(名賢) 94현, 동방(東方)18현 등 133위를 종사하였다. 현재는 39현을 모신다.
상주향교 대성전은 1982년 2월 2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월 7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가 지정 해제되었다. 2020년 12월 28일 상주향교 대성전·동무·서무가 보물 제209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보물로 변경되었다.
[위치]
상주향교는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2길 111[신봉동 203-1] 생기마을에 있다. 상주시청에서 남쪽으로 약 700m 거리에 있는데, 건물은 경사진 구릉지에 정남향으로 있다. 대성전은 향교 건물 후면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변천]
상주향교는 992년(고려 성종 11)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제향 시설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제향 시설과 관련하여서는 1486년(성종 17) 상주목사로 부임한 강구손(姜龜孫)이 성전(聖殿) 3칸 등을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상주향교가 소실될 때 대성전 등의 건물도 함께 소실되었다. 1612년(광해군 4) 상주목사로 부임한 한술(韓述)이 재임 중 상주향교의 동무(東廡)·서무(西廡)와 연당(蓮塘)을 건립하였다. 대성전은 1631년(인조 9) 재건하였다. 1951년부터 상주향교는 상주고등공민학교의 후신인 남산중학교 부속 건물로 활용하게 되는데, 대성전은 강당으로, 동무와 서무는 교실로 사용하였다. 1959년 국고보조금 지원을 받아 대성전을 수리한 뒤 5성위(五聖位)를 봉안하였고, 1966년 대성전을 중창하였다.
[형태]
상주향교는 대지의 차이를 이용하여 전면에 강학 영역, 뒷면에 제향 영역을 조성하였다. 제향 영역에 자리 잡은 대성전 및 동무·서무는 강학 공간보다 한 단 높은 대지 위에 있으며, 내삼문을 통하여 출입한다. 중앙 안마당을 중심으로 대성전과 동무·서무를 ‘ㄷ’ 자형으로 배치하였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단은 단 차이를 이용하여 전면에 널찍한 판석으로 쌓았다. 일부 부재는 석탑의 부재를 가져다 쓴 흔적이 있다. 기단의 맨 상단은 장대석으로 마감하였고, 기단 상면은 전돌을 깔았다. 기단 전면의 경우 2중 기단으로 조성하려던 흔적이 있다. 계단은 기단 앞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9단으로 구성하였다. 주춧돌은 8각 또는 원형으로 다듬었는데, 일부 주춧돌의 경우 형태가 특이하다. 특히, 후면 어칸 동쪽 평주의 주춧돌은 상단과 하단이 각기 다른 별재로 구성된 이중 주춧돌이고, 후면 서쪽 귓기둥 주춧돌은 비교적 높게 솟은 장주 주춧돌의 형태이다. 가구는 일고주 칠량가로 후면에도 고주를 두었다. 가구의 기법과 평면 형식, 공포의 결구 및 통평고대, 부연 마구리 등으로 보아 조선 후기 건물로 추정한다.
동무·서무의 경우 출입문 계단만 차이를 보이고 나머지는 동일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정면 10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남산중학교 교실로 개조되어 사용하면서 상당 부분 수리되었다. 기본 구조 부재에 구멍 흔적이 있으며, 원래 통칸이던 것을 3개의 공간으로 구분하여 활용한 흔적이 보인다. 가구는 전면에만 고주를 둔 일고주 오량가이다. 동무·서무 건물에서 주목되는 점은 10칸 규모의 단일 건물이 경사진 대지 위에 세워져 용마루의 곡선을 유지하면서 기단 전체를 3단으로 구성하였다는 점이다. 이에 하방과 상방의 높이가 한 단씩 감소하도록 입면을 구성하였다.
[현황]
상주향교 대성전에서는 매년 음 2·8월 초정일(初丁日) 석전대제를 봉행한다.
[의의와 평가]
상주향교 대성전·동무·서무는 광복 이후 학교 건물로 활용되었지만, 조선 시대 건물의 형태를 유지하여 건축학적 가치가 높다. 조선 후기 중창된 후 이건 없이 당시 구조 양식 등 원형을 대체로 잘 보전하고 있다. 규모 역시 서울의 문묘 다음으로 크며, 경사 지형을 고려한 입면 구성이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