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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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咸昌鄕校 |
영어공식명칭 | Hamchang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Sangju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무운로 1557-4[교촌리 304-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백지국 |
이전 시기/일시 | 1417년 - 상주 함창향교 이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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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617년 - 상주 함창향교 이건 |
이전 시기/일시 | 1636년 - 상주 함창향교 이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48년 - 상주 함창향교 명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7년 - 상주 함창향교 명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2년 - 상주 함창향교 향교 일곽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2년 - 상주 함창향교 외삼문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6년 - 상주 함창향교 명륜당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0년 - 상주 함창향교 일곽 정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3년 - 상주 함창향교 명륜당 중수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2013년 4월 8일 - 상주 함창향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7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 함창향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상주 함창향교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상주 함창향교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무운로 1557-4[교촌리 304-1] |
성격 | 향교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대성전]|홑처마 팔작지붕[명륜당]|홑처마 맞배지붕[동·서재] |
정면 칸수 | 3칸[대성전]|5칸[명륜당]|3칸[동·서재] |
측면 칸수 | 3칸[대성전]|2칸[명륜당]|1칸[동·서재] |
소유자 | 경북향교재단 |
관리자 | 경북향교재단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교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관학 기구.
[개설]
상주 함창향교(尙州 咸昌鄕校)는 조선 시대 경상도 함창현(咸昌縣)에 건립된 공립 교육 기관이다. 2013년 4월 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상주 함창향교는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무운로 1557-4[교촌리 304-1]에 있다. 교촌리는 조선 시대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교촌리’라 불리었다. 교촌리는 상주시청에서 북쪽으로 약 25㎞ 거리에 있다.
[변천]
상주 함창향교는 1398년(태조 7) 창건되어 1417년(태종 17) 구향리로 이건하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함창현은 신라 시대 고동람군(古冬攬郡)으로 경덕왕 때 이름을 고령(高寧), 고려 광종 때 함녕(咸寧)으로 이름을 고쳤다. 현종 때 상주에 소속되었던 것을 고려 명종 때 감무를 두어 독립하였다. 이후 조선 태종 때 현감을 두었는데, 현의 연혁으로 보아 향교는 여말 선초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 자료 중 가장 이른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으로, 현의 서쪽 5리[1.9㎞]에 향교가 있었다고 한다.
상주 함창향교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1617년 함창현 객관 남쪽 효진남지(囂塵南池) 위 언덕으로 옮겨 새로 지었고 1636년(인조 14) 현재의 위치로 재이건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향교에 무자(戊子) 10월 23일 작성된 『향교중건문서(鄕校重建文書)』 1책이 전하는데, 무자년은 1648년(인조 26)으로 추정되며, 당시 71명을 동원하여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1907년 현감 이종호(李鐘浩)가 명륜당을 중수하였고, 광복 후 1972년 향교 일곽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1982년 외삼문을 중건하였고, 1986년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990년 일곽을 정비하고 1993년 명륜당을 중수하는 등 몇 차례의 보수·정비를 하였다.
[형태]
상주 함창향교는 경사가 심한 언덕에 대지를 3단으로 조성하고 건물을 세웠다. 북쪽 제일 높은 곳에 대성전을 두고 명륜당을 앞에 배치하였다. 대성전과 명륜당 사이에 동재·서재를 두고, 동재 서편에 고직사를 세웠다. 진입 시 건물의 중심이 서쪽으로 약간씩 편향되는 특징을 보인다. 또 대성전과 명륜당의 방향이 약간씩 다른 점도 특기할 사항이다.
상주 함창향교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가구는 2고주 오량이다. 보수 공사 과정에서 일부 구조 부재를 신재(新材)로 교체하였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지형의 단 차이를 이용하여 정면에서 보면 2층 누각 형식이다. 뒷면 돌층계를 통하여 당(堂)으로 오르게 되었다. 가운데 3칸은 대청, 왼쪽 2칸과 왼쪽 1칸은 온돌방을 두었다. 가구는 오량가이다. 동재·서재는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에 약간 경사진 대지에 있다. 이례적으로 기단을 높게 쌓아 건물을 세웠다. 동재·서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동재는 전면칸 마루바닥 등에 장부 구멍 등의 흔적이 확인되어 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서재는 전후칸을 온돌로 하여 기단이 전면부로 돌출된 ‘ㄱ’ 자 형태로 되어 있다.
[현황]
상주 함창향교는 매년 2월과 8월 향사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상주 함창향교는 조선 시대 관학 기구로 함창현 지역의 교육 및 교화의 중심지였다. 함창의 유력한 재지 사족들은 상주 함창향교에서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유교 경전을 배웠다. 동시에 향교에 모여 함창의 향론 형성 등 향교를 향촌 자치 기구로 활용하였다. 조선 후기 서원이 건립되면서 교육와 향촌 자치 기구의 기능은 약화되었지만, 조선 시대 함창 지역 재지 사족의 동향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