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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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雲精舍 |
영어공식명칭 | Cheonunjeongsa Hall |
이칭/별칭 | 천운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외답2길 46[외답동 167-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건립 시기/일시 | 1700년 - 천운정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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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46년 - 천운정사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92년 - 천운정사 중수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1987년 12월 29일 - 천운정사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76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천운정사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천운정사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천운정사 - 경상북도 상주시 외답2길 46[외답동 167-1] |
성격 | 정사 |
양식 | 팔작지붕|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연안 이씨 식산공파 종중 |
관리자 | 연안 이씨 식산공파 종중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외답동에 있는 조선 후기 별서.
[개설]
천운정사(天雲精舍)는 조선 후기 상주 출신 학자 이만부(李萬敷)[1664~1732]의 별서(別墅)로 1700년 건립 당시는 ‘천운당’으로 불렀다. 1987년 12월 29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변경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천운정사는 경상북도 상주시 외답2길 46[외답동 167-1]에 있다. 식산 북록에 있는 동문동 외답마을 끝에 있다. 천운정사는 식산 산비탈에 있고 앞으로는 낙동강 지류인 북천과 병성천 그리고 병풍산을 비롯한 상주평야가 보인다.
[변천]
손만웅(孫萬雄)[1643~1712]이 지은 「천운당기」에 따르면, 이만부가 서울에서 상주로 내려온 1700년 천운당을 짓고, 독서와 교육, 그리고 교유 장소로 사용하였던 공간이라고 한다. 그후 1846년과 1892년 각각 중수하였고, 1893년 5월 천운당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하여 사림들이 계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형태]
천운정사는 남고북저한 경사지에 3단으로 대지를 조성하였다. 가장 윗단에 천운당(天雲堂), 중단에 양호료(養浩寮), 하단에 조감당(照鑑堂)이 배치되어 있다. 천운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ㄱ’ 자형의 팔작·맞배 기와집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의 평면은 ‘ㄱ’ 자형이고 홑처마 지붕이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평면은 왼쪽에 정지 1칸, 온돌방 2칸의 ‘ㅡ’ 자형 팔작에 방 앞으로 마루방 2칸을 달아낸 ‘ㄱ’ 자 형의 아담한 누마루 집이다. 마루방을 ‘천운당’, 구들방 2칸을 ‘양호료’라고 한다. 구조는 경사 지형에 맞춰 ‘ㅡ’ 자형 전면과 마루방은 자연석 기단을 높게 축조하였고, 그 외는 1단으로 낮은 기단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웠다. 특히 북쪽으로 돌출 배치된 마루방 북단의 기둥은 기단이 아닌 장초석 위에 세웠다. 주상부는 민도리 형식이고, 기둥 간에는 한식 토벽에 각 실의 기능에 맞춰 창호를 달았다. 상부 가구는 간략한 삼량가이고 지붕은 온돌방에는 팔작, 마루방에는 맞배에 기와를 이었다. 부엌에는 상부다락이 있고, 앞뒤로 외여닫이 띠장널문이 달려 있다. 부엌 동쪽의 구들방은 앞뒤로 쌍여닫이 살문과 맨 끝 구들방 사이에 사분합들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다. 동쪽 맨 끝방은 동쪽과 남쪽 벽에는 쌍여닫이 살문, 마루방 사이에는 쌍여닫이 굽널살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다. 마루방은 서쪽 2칸 중 방과 연접한 칸에는 쌍여닫이 굽널살문을 달았고, 그외 3면으로는 머름중방 위에 쌍여닫이 살창을 달았다.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이만부의 『누항도첩』 중 「식산정사도(息山精舍圖)」와 비교하면 현재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천운당 뒤쪽인 남쪽으로 개천과 기암 주위로 작은 규모의 건물 2동이 수목과 함께 별동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현재는 없다. 또한 천운당은 북쪽으로 돌출된 마루방이 1칸뿐이며, 기단 없이 장초석 위에 기둥을 세운 구조이다. 평면도 부엌은 구들방, 누마루 2칸 중 1칸은 전면이 개방된 마루로 추정된다. 아울러 누마루의 창호도 현재와 달리 쌍여닫이 띠장널문을 달았고, 지붕은 모두 맞배에 기와를 이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만부의 「노곡기」에는 천운당·조감당 이외에 고반석[석축] 위로 민지정이 있으며, 천운당에서 안쪽으로 종정교(淙淨橋)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천운당 서쪽 담장 밖에 세한단이 있고, 조감당 북쪽에 애련암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황]
천운정사는 수차례 중수와 보수가 있었다.
[의의와 평가]
천운정사는 조선 후기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등 원림 건축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