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768
한자 仁川 蔡氏
영어공식명칭 Incheon Chae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석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49년 - 채수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15년 - 채수 사망
본관 인천 - 인천광역시
입향지 상주 - 경상북도 상주시
세거|집성지 이안리 -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이안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소암리 -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소암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채선무(蔡先茂)
입향 시조 채수(蔡壽)

[정의]

채선무를 시조로 하고 채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상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인천 채씨(仁川 蔡氏) 시조는 고려 때 동지사를 지내고 동지추밀원사에 추증된 채선무(蔡先茂)이다. 채선무의 아들 채신징(蔡愼徵)은 은청광록대부로 대장군에 올랐고, 손자인 채보문(蔡寶文)은 보문각대제학을 지내고 금성백(錦城伯)에 책봉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세거지인 인천을 본관으로 삼고 채선무를 시조로 세계를 이었다. 인천 채씨는 직장공파·필선공파·판서공파·참의공파·군수공파·생원공파·배천공파·복순공파로 분파되었다.

[입향 경위]

인천 채씨(仁川 蔡氏)가 상주 지역에 정착한 것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채수(蔡壽)[1449~1515] 대부터이다. 채수는 함창현감으로 부임한 아버지 채신보(蔡申保)를 따라 함창에서 머무르다가 권이순(權以順)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와 혼인하였다. 1469년(예종 1)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분의정국공신 4등에 녹훈되고 인천군(仁川君)에 책봉되었다. 이후 벼슬에서 물러나 처가가 있는 경상도 함창현 이안촌[현 상주시 이안면 이안리]에 쾌재정(快哉亭)을 짓고 은거하며 독서와 풍류로 소일하였다. 1511년에 최초의 한글 번역본 소설인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지었으나 금서로 규정되어 모조리 불태워졌다.

채수의 아들인 채소권(蔡紹權)은 조선 최초의 화왕계 소설인 「화왕전(花王傳)」을 지었고, 손자인 채유희(蔡有禧)·채유종(蔡有終) 형제는 임진왜란함창현에서 최초로 창의하였다.

[현황]

상주 지역 인천 채씨 주요 세거지로는 이안면 이안리소암리가 있다. 2015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천 채씨는 총 4만 3387명으로 파악되었으나 상주시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관련 유적]

상주 지역 인천 채씨 관련 유적으로는 남재사(南齋舍), 병재사(屛齋舍), 숭덕사(崇德祠), 양정공(襄靖公) 불천위사당, 인천군 재실(仁川君 齋室), 졸재사당(拙齋祠堂)이 있다. 이 밖에 2011년 1월 3일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상주 쾌재정, 1998년 8월 3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나재 채수 신도비 등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