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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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錫驥 |
영어공식명칭 | Seong Seok-gi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준호 |
출생 시기/일시 | 1888년 - 성석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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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28일 - 성석기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 형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39년 8월 22일 - 성석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8년 8월 15일 - 성석기 건국포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하순 -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시장 철시 운동 |
출생지 | 양지리 -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양지리 |
거주|이주지 | 강경읍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산41-2]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성석기(成錫驥)[1888~1939]는 1888년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양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하순 이주하여 살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강경시장 철시 운동에 참여하였다.
철시 운동 주도자는 당시 강경읍에서 미곡상을 운영하던 문상희(文尙羲)였다. 문상희는 3월 하순 집에서 조선의 독립을 고취하는 취지를 기재한 경고문 약 100매와 강경에 있는 각 상고(商賈)는 조선의 독립 시위운동을 위하여 각자 30일 간 상점을 폐쇄하고 영업을 정지할 것이라는 철전(綴廛) 문건 수십 통을 인쇄하였다. 이후 문상희는 3월 27일 밤부터 경고문과 철전 문건을 강경시장 상인들에게 나누어 주며, 철시 운동을 권유하였다. 그 결과 3월 31일부터 4월 3일까지 약 300여 호의 상인들이 동조하여 폐점과 휴업을 실행하였다.
당시 성석기는 강경읍에서 포목상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강경시장에 있는 이성삼(李成三) 집에서 문상희가 작성한 경고문을 보았다. 경고문의 내용은 “일본인이 조선인을 대우함에 있어 비리무도(非理無道)하니 이제 조선을 독립시키는 운동을 일으키자”는 것이었다. 이에 성석기는 약 10장을 받아 강경 읍내 거주자에게 배포하였다. 성석기는 이로 인하여 붙잡혔으며, 1919년 5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0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성석기는 1921년 강경향우친목계에서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24년에는 강경공립보통학교에 기부금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성석기는 1939년 8월 22일 사망하였다.
[묘소]
성석기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산41-2]의 국립서울현충원 제2충혼당 1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성석기의 공적을 기려 2018년 8월 15일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