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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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在瓘 |
영어공식명칭 | Jang Jae-kwan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진희 |
출생 시기/일시 | 1898년 6월 17일 - 장재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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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19년 6월 30일 - 장재관 보성고등보통학교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6월 30일 - 장재관 서울에서 「강화회의조인축하문」 30매 배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8월 21일 - 장재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88년 5월 26일 - 장재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8년 8월 15일 - 장재관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상주시 - 경상북도 상주시 |
거주|이주지 | 인봉동 - 경상북도 상주시 인봉동 67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장재관(張在瓘)[1898~1988]의 본적지는 경상북도 상주군 상주면 인봉리[지금의 상주시 인봉동]이다.
[활동 사항]
장재관은 1898년 6월 17일 태어났다. 장재관은 보성고등보통학교[현 보성고등학교] 4학년생이던 1919년 6월 30일 「강화회의조인축하문」이라는 제목으로 된 “우리 2천만의 조선인은 이번 강화조약의 성립을 축하하며 아울러 국제연맹의 발현을 희망한다. 저번 우리 동포가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결과 다른 나라로부터 동정을 얻어 점차 이에 조선의 부활을 보고 김규식(金奎植)이 국제연맹에서 발언권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들은 위의 연맹회의에 참석하는 위원 여러분들이 정의·인도를 근거로 약소국의 문제일지라도 공평하게 해결할 것을 희망한다”라는 취지의 문서 80매를 배부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장재관은 문서를 받은 당일 30매를 서울 사간동에서 배부하고, 상주 출신으로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학생이던 김성덕(金盛德)에게 20매를 주어 인사동에서 배부하게 하였다.
장재관은 문서 배부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7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1919년 8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장재관은 1988년 5월 2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장재관의 공적을 기려 2018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