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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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良洙 |
영어공식명칭 | Jeong Yang-su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준호 |
출생 시기/일시 | 1893년 1월 3일 - 정양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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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9일 - 정양수 화북면 운흥리 만세시위운동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9일 - 정양수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3월 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4월 26일 - 정양수 출소 |
몰년 시기/일시 | 1953년 3월 20일 - 정양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9년 - 정양수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12월 26일 - 정양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4월 9일 - 화북면 운흥리 만세시위운동 시작 |
출생지 | 중벌리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중벌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정양수(鄭良洙)[1893~1953]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활동 사항]
정양수는 1893년 1월 3일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중벌리에서 태어났다. 정양수는 1919년 4월 8일 화북면 운흥리에 사는 전성희(全聖熙)와 함께 통고문 2통을 작성하고, 통고문을 2명으로 하여금 중벌리와 운흥리 마을 사람들에게 전파시켜 만세시위운동 계획을 알리는 한편 참가를 권유하였다. 이튿날인 1919년 4월 9일 정오 정양수는 전성희 등 약 100명과 함께 운흥리에 모여 태극기 10기를 만들어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급보를 받은 상주의 일본군 헌병 분대와 수비대에 의하여 정양수는 20명과 함께 붙잡혔다. 정양수는 1919년 5월 9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3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정양수는 서울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4월 26일 풀려났다. 정양수는 6·25 전쟁 때 서울에서 납북되었다고 한다.
정양수는 1953년 3월 2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정양수의 공적을 기려 1989년 대통령 표창, 1990년 12월 26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또 1984년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에 의사유적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