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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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東奭 |
영어공식명칭 | Cho Dong-seok |
이칭/별칭 | 국필(國弼),국음(菊陰)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45년 - 조동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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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74년 - 조동석 생원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896년 3월 29일 - 조동석 김산의진 찬획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896년 4월 7일 - 조동석 김천 김산의진 도총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896년 5월 15일 - 조동석 김산의진 지휘 |
몰년 시기/일시 | 1896년 6월 17일 - 조동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2년 8월 15일 - 조동석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석산리 -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 석산리 |
활동지 | 김천시 - 경상북도 김천시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김산의진 도총|김산의진 대장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조동석(趙東奭)[1845~1896]의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국필(國弼), 호는 국음(菊陰)이다. 아버지는 조주하(趙冑夏)이다.
[활동 사항]
조동석은 1845년경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 석산리에서 태어났다. 조동석은 1874년(고종 11)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895년 8월 을미사변과 11월 단발령으로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선산(善山) 유생 허위(許蔿)와 상주 유생 이기찬(李起璨)·강무형(姜懋馨) 등과 함께 창의를 준비하였다.
조동석은 1896년 3월 29일[음력 2월 16일] 김산의진(金山義陣)에 참여하여 찬획(贊畫)을 맡아 활동하였다. 당시 김산의진은 대장 이기찬을 비롯하여 중군 김기력(金基櫟), 찬획 조동석·이용주(李龍周)·강일선(姜馹善)·허겸(許蒹)·이능규(李能圭)·이상설(李相卨)·여중룡(呂中龍), 군관 강무형·이기하(李起夏), 종사 이숭주(李崇周)·최동은(崔東殷), 참모 허위·여영소(呂永韶), 군량도감 조석영(曺奭永)·여승동(呂承東)·이현삼(李鉉參)·조남식(趙南軾), 장재관(掌財官) 배헌(裵憲)·강명숙(姜明叔)·박래환(朴來煥)으로 진용이 편성되어 있었다. 대부분 김천을 비롯하여 상주·선산 등지의 유생들이었다.
김산의진은 1896년 4월 2일[음력 2월 20일] 대구에서 파견된 관군과 벌인 전투에서 패퇴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4월 7일 허위 등과 함께 각처에 통문을 돌리고 직지사(直指寺)에서 김산의진을 다시 일으켰는데, 조동석은 도총(都摠)을 맡았다. 당시 의진은 참모장 허위, 중군 양제안(梁濟安), 찬획 강무형, 서기 이시좌(李時佐)·여영소, 선봉장 겸 조련장 윤홍채(尹鴻采) 등으로 구성되었다.
조동석은 김산의진 도총으로서 지례(知禮)·영동(永同)·황간(黃澗)·보은(報恩)·문경(聞慶) 등지를 전전하며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동석은 5월 15일 사임한 이기찬에 이어 의병진의 대장을 맡아 지휘하였다. 조동석은 1896년 6월 17일[음력 5월 7일] 상주 노음산 계곡에서 관군에게 체포되어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조동석의 공적을 기려 2002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