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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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龍 |
영어공식명칭 | Heo Yong |
이칭/별칭 | 허진하(許鎭河)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준호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10월 20일 - 허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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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18년 - 허용 서울 중동학교 수학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 허용 서울 만세 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1월 6일 - 허용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 형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59년 2월 26일 - 허용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7일 - 허용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성동리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성동리 |
학교|수학지 | 중동학교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경성 - 서울특별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허용(許龍)[1894~1959]은 1894년 10월 20일 지금의 상주시 낙동면 성동리에서 태어났다. 경성의 중동학교(中東學校)에 진학하였지만 1918년 12월 자퇴하였다. 이후 상주에서 농사를 짓던 허용은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국장에 참례하기 위하여 2월 25일 상경한 뒤 종로구 원서동에 있던 심원명(沈遠明)의 집에 머물렀다.
허용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국장에 참례하려고 상경한 상주 출신 조성흠(趙誠欽)과 함께 대한문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군중이 대한문에 이르렀고, 허용은 대열에 합류하여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3월 5일 오전 10시경 고향의 지인인 조익연(趙翼衍)으로부터 책을 구입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경성일보사 앞을 지나가던 허용은 남대문 쪽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여 온 시위 대열에 합류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허용은 1919년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공판에 회부되었고, 11월 6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을 언도받았다. 허용은 허진하(許鎭河)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으며, 1959년 2월 2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허용의 공적을 기려 2021년 11월 17일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