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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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奉山 城隍祭 |
영어공식명칭 | Religious Ritual to Tutelary Deity in Cheonbongsan-Mountain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만산4길 92[만산동 45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재영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714년 - 천봉산 성황제 제당인 성황사 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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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8년 - 천봉산 성황제 제당인 성황사 이건 |
의례 장소 | 성황사 - 경상북도 상주시 만산4길 92[만산동 454] |
성격 | 민간신앙|마을 제사|민속 의례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4월 8일 |
신당/신체 | 성황사|남녀 신상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만산동에 있는 천봉산 성황사에서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천봉산 성황제(天奉山 城隍祭)는 경상북도 상주시 만산리 545번지에 있는 천봉산 성황사에서 지내는 마을 제사를 말한다. 과거에는 상주 지역의 향리들이 중심이 되어 지내던 읍치 성황제였으나 현재는 마을의 안녕을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동제(洞祭)]의 하나이다.
[연원 및 변천]
천봉산 성황제는 한때는 읍치 성황제였는데, 언제부터 관(官)에서 지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선 시대의 기록을 보면, 과거의 성황사는 현재와 같은 사당 형태가 아니라 큰 바위 위에 단(壇) 형태로 모시던 서낭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천봉산 성황제가 관 주도의 제사인 읍치 성황제로 정착하기 이전에는 성황사가 인근의 주민들이 민속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던 서낭당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후 천봉산 성황제가 읍치 성황제로 정착되면서 향리들이 성황제를 주도하였다. 상주 지역에는 읍치를 중심으로 장기간 세거하여 온 향리 가문으로 상산 박씨(商山 朴氏)와 상주 김씨(商州 金氏)의 두 문중이 있는데, 상산 박씨 문중에서 읍치 성황제를 주도적으로 치제하였다.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지속과 중단이 거듭되다가 현재는 안너추리마을의 성황사보존회에서 제의를 담당하면서 지속성을 확보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만산리 안너추리마을[만산2리]의 뒷산인 천봉산에는 성황사, 미륵당, 산신당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성황사는 현재 산 아래에 있는데, 과거에는 산꼭대기에 있었다고 한다. 1714년 중수하였으나 그 후 20년 뒤에 건물이 퇴락하여 산 아래쪽으로 옮겨서 다시 세웠다고 한다. 천봉산의 성황사에 대하여 처음으로 기록하고 있는 문헌은 1929년 『상산지(商山誌)』의 증보판과 1617년 편찬된 『상산지』의 질사조(秩祀條)이다. 여기에 실린 기록을 보면 당시의 성황사는 현재와 달리 사당의 형태가 아니라 큰 바위 위에 단(壇) 형태로 모셨으니 서낭당으로 지역민이 모셨음을 알 수 있다.
이후의 기록으로는, 상주의 사직단을 비롯한 사우(祠宇)를 정비하면서 성황사의 사우를 신계리[현재의 계산동]에 세웠는데 얼마 뒤에 천봉산 동쪽 기슭으로 옮긴 후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성황사는 팔작기와집 형태이며, 건물 앞 편액에 “성황사 무신년 정월(城隍祠 戊申年 正月)”이라 적혀 있어 1908년에 성황사를 이건한 것으로 보인다.
성황사 안에는 부부 신상 형태의 신격이 모셔져 있는데, 나무로 된 신상에 오색 천으로 된 옷을 입히고 흰색 고깔을 씌운 모습이다. 남성 신의 경우 파란색의 옷을 입고 머리에 사모(紗帽)를 썼으며, 여성신은 붉은색 옷을 입고 머리를 얹었다. 부부 신이 입은 옷은 기도를 드리는 무속인들이 해마다 새옷을 장만하여 갈아입히는 것이라고 한다. 「성황사중수상량문」에 따르면 성황사에 모셔져 있는 부부 신상은 송나라의 부부 신상을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황신과 관련되어 마을에서 전하는 이야기는 현재 모셔져 있는 신격과는 다른데, 성황신이 부부가 아닌 남매로 전하여지기 때문이다.
한편,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성황사에서는 부부 신상과 함께 말을 모셨다고 전하여지는데, 현재는 소실되었다. 또한 이전의 남녀 신상은 2009년 11월 22일 도난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새로 신상을 모시고 있다.
[절차]
천봉산 성황제는 해마다 사월 초파일에 유교식으로 제의를 지낸다. 준비 과정을 보면, 제삿날 이틀 전에 안너추리마을 노인회장이 회원들을 회관에 소집하여 제의 준비에 대한 간단한 회의를 연다. 제물 마련을 위한 장보기는 하루 전인 사월 초이렛날 아침 9시쯤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된 마을 사람 두 명이 행한다.
제삿날인 사월 초파일 당일 아침, 여성 노인 회원이 성황당으로 올라가 청소한 후 마을회관에 모여서 제물을 준비한다. 제물 준비는 오로지 여자 노인 회원들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제물을 차려 놓는 것도 여성 회원들이 한다. 먼저 제관 한 명과 집사 한 명이 성황사 앞에 있는 산신당에서 통명태, 삼실과, 전을 차려 놓고 강신과 초헌으로 산신제를 올린 다음에 성황제를 올린다. 제의 절차는 강신-초헌-독축-아헌-종헌-철상-음복으로 이루어진다. 초헌관은 매년 상주문화원장 등이 맡고, 아헌관은 안너추리마을 노인회장이, 종헌관은 상산 박씨 문중에서 번갈아 가며 맡는다. 성황제를 마치면 음복을 한다. 성황제 이후에는 성황사 아래에 있는 미륵당인 영암각에 제물을 올리고 나서 축문을 태운다.
[현황]
천봉산 성황제는 현재는 성황사보존회를 중심으로 해마다 지속되고 있다. 성황제를 향리의 후손인 양로당 회원들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읍치 성황제에서 마을의 공동체적 민속신앙, 즉 동제로 전환된 성황제는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도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