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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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현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833년~1842년 - 「고유가 베푼 음덕」 『계서야담』 4권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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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년 12월 1일 - 「고유가 베푼 음덕」 상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상주 이야기』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11월 30일 - 「고유가 베푼 음덕」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 |
관련 지명 | 상주시 - 경상북도 상주시 |
성격 | 인물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고유|박|조엄|아전|아전의 아들 |
모티프 유형 | 인물담|행적담|치자담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에 전하여 내려오는 명관 고유에 관한 이야기.
[개설]
「고유가 베푼 음덕」은 상주 지역에 전하여지는 조선 후기 명관(明官) 고유(高裕)[1722~1779]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유의 자는 순지(順之)이며, 호는 추담(秋潭)이다. 1722년(경종 2) 경상도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1743년(영조 19)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창녕현감(昌寧縣監), 경상도사(慶尙都使) 등 여러 관직을 거처 승정원(承政院) 부승지(副承旨)에 올랐다. 고유는 창녕현감 당시 선정을 베풀고 명재판을 한 덕분에 ‘고창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문헌으로 남아 있는 고유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상주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일대에 고유의 행적이 설화로 활발히 전승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고유가 베푼 음덕」은 조선 순조(純祖)[1790~1834] 때 편찬된 『계서야담(溪西野談)』 4권에 기록되어 있다. 2007년 상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상주 이야기』에도 수록되어 있고, 2010년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
고유는 강직하고 청렴한 사람이었다. 문과에 올라 여러 고을에서 관직 생활을 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이름이 높았다.
옛날에 글재주가 뛰어난 박(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박은 표충사(表忠祠) 원장(院長)이었으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뒷배로 두고 악행을 저질렀다. 사람들은 박을 두고 말하길 ‘남명자(南明者)’라고도 하였다. 각 고을에 폐를 끼치고 사찰에 악을 행하여 중과 속인이 다 박을 싫어하였다. 하지만 박의 세력이 두려워 감히 어쩌지 못하였다. 박이 일이 있어 창녕을 지나다가 정문을 열게 하고 들어가 원님을 보고자 하였다. 이때 고유가 미리 관노들과 약속하고 박을 잡아들였다. 하지만 박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고, 끝내 땅에 내쳐져 죽고 말았다. 며칠 지나자 박과 친하게 지냈던 권문세족의 글이 쏟아졌다. 하지만 민심은 모두 고유의 행동을 두둔하고 칭찬하였다.
상서(尙書) 조엄(趙曮)[1719~1777]이 영남의 관찰사(觀察使)로 있을 때였다. 도내에 금주령을 내렸으나 창녕 지역이 법을 어겼다. 이에 조엄이 고을의 우두머리를 다스리라는 경계의 명을 내렸다. 하루는 고유가 감영(監營)에 나아가 종을 시켜 술을 사 오게 하였다. 마시고 크게 취하여 관찰사를 찾아가 “창녕에는 비록 박주(薄酒)가 있으나 감히 마시지 않는데, 이제 감영 밑에 오니 술 빚지 않는 집이 없고 술맛 또한 좋았습니다. 하관(下官)은 끝없이 마셨습니다”라고 하였다. 관찰사가 고유의 말뜻을 알고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고유는 여러 군현을 다스렸으나 털끝만큼도 남의 것을 취하지 않아 집이 가난하기는 처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상주의 아전 한 사람이 늘 겸종(傔從)으로 있었는데, 고유가 처음부터 봉급의 여분을 다 주어 아전은 부자가 되었다. 그 후 고유가 죽자 고유의 자손은 가난하여 살길이 막막하였다. 이때 아전은 80세였는데, 하루는 자신의 아들과 손자를 불러 말하였다. “우리 집이 지금같이 부자가 된 것은 다 고관사(高官司) 님의 덕택이다. 관사님이 살아 계실 때 전곡을 드리고 싶었으나 깨끗하신 덕에 누를 끼칠까 두려웠다. 혹시 드린다 하여도 반드시 받아 주실 리도 없었던 까닭에 이제까지 참아 왔다. 하지만 오늘날 고관사 댁의 형편을 들으니 정말 참혹하더구나. 어찌 내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은혜를 저버리면 하늘이 반드시 재앙을 내리는 법이다. 마음먹고 사 둔 전답과 저축한 돈을 바치고자 하니, 너는 내일 고관사 댁 아드님이나 손자를 모셔 오도록 하여라.”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순순히 “예” 하고 대답하였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이튿날이 되자 아들은 “일이 있어 못 오신다”라고 하며 아버지를 속였다. 때마침 고유의 손자가 성내에 들러 잠깐 아전의 집을 방문하였다. 하지만 아전의 손자가 고유의 손자를 쫓아내 할아버지와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고유의 손자가 분함을 참고 돌아가는 길에 읍내에 사는 친척을 만났다. 고유의 손자는 친척에게 아전의 자손이 자신을 쫓아낸 일을 말하였다. 친척은 곧장 아전을 찾아가 사실을 알렸다. 아전은 친척의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자손들을 불러 꾸짖고는 사죄하기 위하여 가마를 세내어 타고 곧장 고유의 집으로 찾아갔다. 고유의 손자는 문 앞에서 죄를 청하는 아전을 보고 놀랐고, 아전은 고유의 손자에게 자기 집으로 함께 가기를 간청하였다. 아전은 고유의 손자를 집으로 데려와 융숭하게 대접하며 말하였다. “소인의 옷과 밥은 다 돌아가신 영감님의 덕택입니다. 소인이 귀댁을 위하여 마음을 둔 지 몇 년이 지났습니다. 이에 받들어 드리오니 사양하지 마십시오.” 아전은 고유의 손자에게 땅문서와 매년 추수한 200석 및 돈 천 냥을 주었다. 그 덕분에 고유의 자손들도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고유가 베푼 음덕」의 주요 모티프는 ‘명관 고유의 행적’, ‘은혜 갚은 하인’ 등이다. 「고유가 베푼 음덕」은 조선 후기의 어진 관리였던 고유가 악한 관리를 벌로 다스리는 일화를 담은 치자담이다. 또한 고난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는 일화를 담고 있는 행적담이기도 하다. 고유가 등장하는 설화들을 ‘고유 설화’, 또는 ‘고창녕 설화’라고 하며, 재치로 어려운 처지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 관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광포 전설인 ‘어사 박문수 설화’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경상도에 전승되는 고유 설화들은 대부분 백성의 어려운 처지를 잘 해결한 명판결에 대한 일화를 내용으로 한다.
상주 지역에 전승되는 「고유가 베푼 음덕」에서는 고유 덕에 부자가 된 아전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고유의 손자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어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내용 속에는 선행을 베풀면 복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사고가 내재되어 있다. 또한 상주 지역에는 상주와 관련 있는 역사적 실존 인물에 대한 전설이 많이 계승되고 있는데, 「고유가 베푼 음덕」 또한 이러한 상주 지역 설화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고유가 베푼 음덕」처럼 상주 인물들의 영웅적 행적을 다룬 전설들을 통하여 상주 인물들을 대한 상주 지역민들의 애정과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