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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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Weaver's Song |
이칭/별칭 | 「베틀가」,「베짜기노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미숙 |
채록 시기/일시 | 1981년 7월 23일 - 「베틀노래」 김태록에게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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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 시기/일시 | 1981년 12월 1일 - 「베틀노래」 김영희에게서 채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0년 - 「베틀노래」 두 편이 『상주시사』 4권에 수록 |
채록지 | 화달리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화달리 |
채록지 | 신봉리 -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신봉리 |
가창권역 | 「베틀노래」 - 경상북도 상주시 |
성격 | 민요 |
기능 구분 | 노동요 |
가창자/시연자 | 김태조|김영희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부녀자들이 베를 짜면서 부르던 민요.
[개설]
「베틀노래」는 전국 곳곳에 「베틀가」, 「베짜기노래」 등의 이름으로도 분포하고 있는 부녀 노동요이다.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사설의 짜임은 거의 일정하게 짜여 있는데, 대개는 월궁에서 놀던 선녀가 지상으로 내려와 옥난간에 베틀을 놓는 과정과 베를 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 전하여 오는 「베틀노래」는 특히 베틀 여러 부분의 생김새와 베틀질을 하는 모습을 그린 대목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채록/수집 상황]
「베틀노래」는 상주 지역에서 2종이 채록되어 있다. 하나는 1981년 7월 23일 사벌국면 화달리에 살던 제보자 김태조에게서 채록되었으며, 다른 하나는 1981년 12월 1일 화서면 신봉리에 살던 제보자 김영희에게서 채록되었다. 「베틀노래」 2종은 2010년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 437~440쪽에 실려 있다.
[구성 및 형식]
상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베틀노래」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틀을 차리는 형세, 베 짜는 아낙네가 서울에 간 신랑을 그리워하면서 베를 짜는 모습, 그리고 기다리던 신랑이 칠성판에 누워 온 것을 보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다.
[내용]
화달리의 김태조에게서 채록한 「베틀노래」 사설 내용의 일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밤중에 노더나 선녀 옥황님께다 죄를 짓고/ 인간으로 귀양 와서 마실에 일이 전혀 없다/ 금사 한 필 짜자 하고 월궁으로 치치나 달라/ 달 가운데 계수나무 동편으로 벋은 가지/ 옥도끼로 찍어 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앞집에라 김 대목아 뒷집에라 이 대목아/ 이내 집에 들어를 나서 술도 먹고 밥도 먹고/ 베틀 한 채 지어 주게 양철간주 백통대로/ 담배 한 대 먹은 후에 먹줄로야 튕겨 내어/ 자전나무로 굽 다듬고 굽은 나무로 잣 다듬어/ 금대패로 밀어 내어 얼렁뚝딱 지어 내니/ 베틀이야 좋다마는 베틀 놀 데 전혀 없네/ 좌우 산천 둘러보니 옥난간이 비었구나/ 베틀 놓세 베틀 놓세 옥난간에 베틀 놓세/ 베틀 다리는 양 네 다리요 앞다리는 높이 놓고/ 뒷다리는 낮게 놓고 가로세라 저는 양은/ 청룡황룡 거니난 듯 구름에다 잉아를 걸고/ 안개 속에 구리 삼아 잉앗대는 삼형제구나/ 눌루름대는 홀아비라 세모졋다 비거미는/ 올올이를 갈아 놓고 사침이라 갈린 양은/ 칠월이라 칠석날에 견우 직녀 갈림 갔다.”
신봉리의 김영희에게서 채록한 「베틀노래」 사설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선녀 선녀 노던 선녀 하늘 우에 노던 선녀/ 지하 땅에 내려오니 하알 일이 전혀 없어/ 사방 산천 둘러보니 비었도다 비었도다/ 옥난간이 비었도다 옥난간에 베틀 놓고/ 음지 쪽에 탄틀 놓고 양지 쪽에 베불 놓고/ 쟁피솔로 어리설설 빗기스로 담배피를/ 감아가조 옥난간에 비틀 놓고 비틀 다리/ 네 다리요 선녀 다린 두 다릴세 합니모두/ 육 다리요 앉일개라 돋은 양은 우리나라/ 금상님의 용산작위 하였듯이 부태일심/ 두른 양은 혼인혼사 금복하니 명가복가/ 감겼도다 앙금장금 취할 장은 도애동똑/ 금무지개 서해 서쪽 질렀도다 바디집이라/ 쳐는 소리 청룡황룡 노황룡이 구비쳐는/ 소리로다 물잘싸는 지질개는 이리 가며/ 눈물 흘리고 저리 가며 눈물 흘린다 북바디집/ 넘나드는데 대동강을 넘나드네 대동강에/ 아들 낳고 알품 팔로 넘나든다 잉애대라/ 새명지는 혼물전에 잔칠런가 배포장을/ 둘러쳤네 눌림대는 홀애빈데 두목에다/ 끈을 달아 녹수강에 띄워 있고 사침대는/ 형제부네 비기미는 칠형젠데 천 리 길에/ 만 리 길에 그침 없이 잘도 가네 용두머리/ 우는 소리 얼산갈산 찬바람에 기러기 우는/ 소리로다 신집나문 홀애빈데 모옥에다/ 끈을 달아 밤낮 없이 놀아나네 가르쇠는/ 질린 것이 은하수 질린드고 도투마리/ 넘는 소리 좁은 골에 벽력 치고 뱁대기라/ 치는 양은 여게 저게 도사범의 수가친가/ 여게도 저고 저게도 전다 용두머리 우는 소리/ 얼산갈산 찬바람에 기러기 우는 소리로다/ 하루 짜고 이틀 짜고 반배필을 은가새로/ 찝어 내서 찝어다가 앞내걸에 히와스러/ 뒷내물에 바래는데 은방매이로 뚜디리서/ 자기한농 반닫이에 오동 장롱 캐키소에/ 떨티리고 대문 밖에 썩 나서서 뒷집에/ 김 선비에 앞 집에 이 선비야 우리 선비/ 안 오던가 오기사야 오대마는 칠성판에/ 실리 오대 아이고 답답 내 일이야 일산대를/ 바랬더니 영전대가 왠일이요 분벽사창/ 너른 방에 홀로 누워 생각하니 앉았으니/ 임이 오나 누웠으니 잠이 오나 소이졌네/ 소이졌네 비개넘에 소이졌네 그길사나/ 강이라고 오리 한 쌍 기우 한 쌍 쌍쌍이도/ 떠돌온다 요기우야 조기우야 대동강을/ 어디다 두고 눈물강에 떠돌오나 두문강도/ 있건마는 그길사나 강이라고 눈물가에/ 찾아오나.”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과거 상주 지역은 전국 명주의 최대 생산지로도 유명하였다. 당시 상주 지역에서는 필요한 옷을 만들고자 누에에서 나온 실로 직접 명주를 짜는 모습을 마을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현황]
거의 모든 것이 기계화, 자동화된 현대 사회에서 옷을 만들어 입고자 직접 베를 짜는 수고로움은 더는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 예전처럼 베를 짜는 모습도, 베를 짜면서 졸음을 쫓으려고 부르던 「베틀노래」도 더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베틀노래」는 전국 곳곳에 같은 유형의 사설이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상주 지역의 「베틀노래」는 각 편이 비교적 길 뿐만 아니라 문학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