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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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養蠶 |
영어공식명칭 | Silkworm Farming in Sangju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명은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견직물을 생산하고자 누에를 치는 일.
[개설]
양잠(養蠶)은 누에를 사육하여 누에고치를 생산하는 일을 일컫는다.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실로 짜낸 명주는 오랫동안 최고급 직물로 여겨졌고, 상주는 조선 시대부터 전국 제일의 누에고치 및 명주의 생산지였다. 일제 강점기와 현대의 통계를 보더라도 누에고치의 생산량이 가장 많은 도는 늘 경상북도였으며 그중에서도 단연 상주 지역의 생산량이 가장 많았다.
양잠은 오래전부터 농가의 부업으로 많이 경영되었다. 특히 조선 시대부터 환금성이 좋은 상업적 농업으로 손꼽혔는데, 이러한 점에서 양잠업은 농촌 사회 변동을 연구할 때 중요한 소재로 거론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의 장려와 지원으로 누에고치의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였으나, 현대에 이르러 1980년대부터는 합성 섬유의 발달과 값싼 중국산 제품의 유입, 도시화에 따른 농촌 인구의 이탈 등으로 양잠 농가가 크게 감소하였다.
[조선 시대의 상주 양잠]
우리나라 양잠에 대한 기록은 고조선에 관한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때는 나라에서 양잠을 장려하였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고려 시대에는 생활의 근원이 농사일과 누에치기에 있다고 하여 크게 장려하였고, 누에치기를 처음 시작하였다는 신 서릉씨에게 제사를 지내는 선잠제(先蠶祭)를 지냈다. 조선 시대에는 양잠을 장려하기 위하여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는 궁중 의식인 친잠례(親蠶禮)를 시행하였다. 현재도 서울에는 잠실(蠶室), 잠원(蠶院) 등 양잠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양잠은 우리 민생과 관련한 중대사로 여겨졌다.
상주 지역은 조선 시대부터 양잠업이 발달하여 전국 제일의 누에고치 생산지였으며 명주의 고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상주의 특산품으로 뽕나무가 기록되어 있으며,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는 상주에서 임금에게 바친 공물 중 첫째 목록에 명주의 옛 명칭인 ‘면주(綿紬)’가 기록되어 있을 만큼 양잠업은 조선 시대 상주의 주력 산업이었다.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재위 1623~1649] 때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은척면 두곡리의 ‘상주 두곡리 뽕나무’[천연기념물]는 양잠업의 본고장인 상주의 오랜 양잠 역사와 전통을 실증하는 뽕나무이다.
1907년 상주 재정고문부 분청에 근무하였던 마츠나가[松永] 재무관보의 「상주·함창의 양잠업에 대한 조사 보고」에는 ‘상주·함창은 고래(古來)의 양잠의 땅으로 발을 한번 이 지역에 들이면 뽕나무로 이루어진 별천지에 들어온 느낌’이라는 대목이 있다. 이처럼 상주는 양잠으로 이름 높은 고장이었고 누에고치의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이었다.
특히 함창 지역은 신라 시대부터 양잠 주산지로 유명하였고 함창읍에서는 전국 최대 규모로 명주를 사고파는 시장인 명주전(明紬廛)이 열리기도 하였다. 1426년 삼포(三浦) 개항 이후 조정에서 왜인의 이동로로 지정한 3개 길 중 하나인 중로(中路)는 부산-양산-밀양·청도-대구-안동-상주-문경-괴산-이천-광주-한양으로 이어져 상주를 거쳐 갔다. 또한 상주는 낙동강 수운의 중심지 중 하나로서 조선 시대 교통의 요지였다. 상주에서 생산된 명주는 함창 명주전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로 판매되었으며, 함창에서 생산된 명주는 ‘함창명주’라는 이름으로 전국 각지에서 인기를 누렸다.
[일제 강점기의 상주 양잠]
상주 지역에서 양잠업이 가장 번성하였던 때는 일제 강점기인데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잠업 육성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1914년 일제는 양잠 농가에 세잠누에[유충 때 세 번 자고, 세 번 허물을 벗는 누에]를 보급하였고, 1919년에는 1대 교잡종 사육을 장려하는 등 누에 품종을 단일화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상주 지역에서도 누에고치의 생산량이 급증하였고 뽕나무 재배 면적도 확대되었다.
또한 일제는 우량 잠종(蠶種)을 일괄 공급하는 한편 재상장려원(栽桑奬勵員)을 두고 뽕나무를 심을 적합한 땅을 선정하여 식재한 뒤 영농 기술을 지도하였고 면별로 양잠 교육을 실시하는 등 세밀하게 관리하였다. 이후 상주는 김천, 안동과 함께 경상북도의 대표적인 누에고치 생산지로 성장하였다.
일제 강점기 전국에서 누에고치 생산량이 가장 많은 도(道)는 언제나 경상북도였고, 경상북도 내에서 누에고치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은 상주였다. 1914년에는 전국 최초로 상주에서 누에고치 공판장이 열렸는데 당시 상주의 양잠 발달 수준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음을 의미한다. 또한 1917년 조선은행 조사국에서 펴낸 『경상북도의 잠업과 금융』을 보면 1913~1916년 경상북도의 누에고치 생산량은 7만 6764석[1381만 7520ℓ]이었는데 그중 약 14% 가량인 1만 291석[185만 2380ℓ]이 상주에서 생산되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상주에서는 평균 30% 이상, 함창에서는 50% 이상의 세대가 명주를 짜고 있었다고 한다. 다른 조사에 의하면 함창에서는 70%의 세대가 양잠을 하였는데 비단을 실제로 착용하는 사람의 비율은 2%에 지나지 않아 상업적 농업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1934년 경상북도의 누에고치 총 생산량은 444만 8058㎏이고 상주의 누에고치 생산량은 61만 7768㎏이어서 경상북도 누에고치 생산량의 13.89%를 점하였다. 상주의 누에고치 생산량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30만 1255원이었다. 경상북도 내에서 상주 다음으로 누에고치 생산량이 많은 곳은 안동이었는데, 안동의 누에고치 생산량은 40만 9286㎏이어서 상주와는 큰 격차를 보였다. 1936년에는 상주 지역에서 1만 9079석[343만 4220ℓ]의 고치가 생산되었는데 이 중 1만 2202석[219만 6360ℓ]이 군 외로 이출되었으며, 당시 함창 지역의 6개 공동 작업장에서는 119개의 직기가 가동되었다.
한편 상주는 잠업 전문 교육의 선도지이기도 하였다. 1921년 상주에는 전국 최초로 양잠 기술 정규 교육 기관인 상주공립농잠학교(尙州公立農蠶學校)[현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가 설립되었다. 상주공립농잠학교는 경상북도에서 대구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농업 학교였으며 일제 강점기에 상주가 양잠업으로 위상이 높았음을 입증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양잠 정책은 생사(生絲)를 수탈하기 위한 정책이었으며 농민에게는 극도로 불리한 정책이었음에도 일제 강점기 상주에서 양잠업이 번성하였던 이유는 농업 외에 다른 산업이 크게 발전하지 못하여 농가 비율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며, 동시에 상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던 때에 제도적으로 양잠업을 통제·관리하였기 때문이다.
[현대의 상주 양잠]
양잠업은 해방 후 정부의 관리 미흡과 6·25 전쟁으로 쇠퇴하였다가 1960년대 초반 정부에서 잠사업을 장려하면서 부흥하였다. 정부는 1962년부터 197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잠업 증산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잠사업을 근대 산업으로 육성시켰다. 이 무렵 상주 지역에서는 천수답에 대대적으로 뽕나무를 심어 넓은 들은 전체가 뽕밭으로 변하였다. 상주 지역민들은 논에 뽕밭을 조성하고, 헛간과 창고에 잠실을 지어 누에를 키웠다.
누에고치와 명주는 1970년대 후반까지 일본에 수출되어 상주의 양잠업과 제사업은 함창읍, 이안면, 공검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집 건너 한 집이 누에 치고 명주 짜는 집일 정도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이후 일본의 수입 금지 조치, 중국산 명주의 대량 수입, 도시화에 따른 농촌 인구의 이탈, 누에고치와 명주의 국내 수요 급감 등으로 양잠업은 급격히 쇠락하였다. 쇠락의 길을 걷던 양잠업은 1990년대 중반 건조 누에, 수번데기, 동충하초, 오디 등을 생산하는 기능성 양잠업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아 양잠 농가가 늘기 시작하였다.
상주시는 양잠업 주산지의 명성을 지키고 양잠의 본고장이라는 명성을 되살리기 위하여 함창읍에 2013년 잠사업과 명주 길쌈을 주제로 한 ‘함창명주테마파크’를 조성하고 함창명주테마파크 내에 함창 명주의 역사를 주제로 한 함창명주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상주시는 또한 고부가 가치 첨단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양잠업을 의료 산업과 식품 산업, 관광 산업으로 확대하고 있다.
한편 상주시는 상주 양잠의 명성을 지키고 전통 명주의 맥을 잇기 위하여 농업 주요 시책 7개 중 하나인 ‘잠업 주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잠업 주요 사업은 양잠 산업 육성 지원 사업, 애누에 공동 사육비 지원 사업, 명주 생산용 생사 구입비 지원 사업으로 나누어 추진하고 있다. 양잠 산업 육성 지원 사업은 양잠 기반 시설 설치를 지원하는 양잠 산물 경쟁력 강화 사업과 실크 생산 시설·기계·장비 구축을 지원하는 실크 산업 시설 현대화 사업으로 다시 나뉜다.
양잠 산업 육성 지원 사업의 지원 비율은 도비 15%, 시비 35%, 자부담 50%이며 양잠 산물 경쟁력 강화 사업은 농가 2억 원 이내, 양잠 법인 7억 원 이내, 양잠 농협 10억 원 이내에서 지원하고 실크 산업 시설 현대화 사업은 일괄 2억 원 이내에서 지원한다.
애누에 공동 사육비 지원 사업량은 총 170상자이며 도비 30%, 시비 70%의 비율로 지원한다. 신청 대상은 누에를 3령까지 사육하여 누에 사육을 희망하는 농가에 공급 가능한 양잠 농가, 양잠협동조합, 양잠영농조합법인이며 지원 단가는 상자 당 3만 원이다. 명주 생산용 생사 구입비 지원 사업 사업량은 1,000㎏이며 지원비는 시비 35%, 자부담 65%이다. 상주시는 또한 농촌 고령화 대안 농업으로 양잠업을 실버 농업으로 특성화시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