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92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은정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11월 30일 - 「효곡마을의 효자각」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2년 12월 5일 - 「효곡마을의 효자각」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한국민속문학사전』 설화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최만재 효자각 -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효곡로 563-10[효곡리 182] |
성격 | 효행담|인물 전설|사물 전설|지명 유래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최만재|최혁형|꿈속 노인|호랑이 |
모티프 유형 | 계절에 맞지 않는 것을 구한 효자|호랑이의 도움을 받은 효자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효자 최만재 효자각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효곡마을의 효자각」은 최만재(崔晩載)라는 효자에 대한 인물 전설이자 효행담이다. 또한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에 최만재 효자각(崔晩載 孝子閣)이 세워진 경위와 왕실마을이 ‘효곡(孝谷)’으로 불린 내력이 담긴 사물 전설이자 지명 유래 전설이기도 하다.
[채록/수집 상황]
「효곡마을의 효자각」은 2010년 11월 30일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과 2012년 12월 5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한국민속문학사전』 설화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지금부터 160여 년 전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의 왕실이라는 동네에 최만재라는 청년이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최만재는 어려서부터 행실이 바르고 효심이 뛰어나 마을 어른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평화롭게 살던 최만재의 집안에 큰 근심거리가 생겼다. 최만재의 아버지인 최혁형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였던 최만재는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유명하다는 의원을 찾아보고 약을 구하여 오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또 나무를 하여 내다 판 돈으로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어떻게 하여서든지 구하여 오는 등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대소변까지 받아 내야 할 정도로 더욱더 심하여지기만 하였다.
어느 겨울날, 최만재는 깊은 산에 가서 약초를 캐다 놓고 다른 날처럼 아버지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미음을 몇 숟가락 받아 먹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버지가 미음도 제대로 못 먹자 최만재가 아버지에게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하여 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참외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 참외가 있을 리 없었다. 최만재는 무척 당황하였지만 구하여 보겠다고 하고 방을 나왔다. 이제까지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구하여 왔지만 엄동설한에 참외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최만재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걱정 속에서 며칠이 지나갔다. 첫눈이 내려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다. 최만재는 참외 구할 걱정을 하며 누워 뒤척이다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흰 수염을 늘어뜨리고 큰 지팡이를 든 노인이 나타나 최만재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만재야, 뭘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느냐? 집 뒤편 나뭇더미 사이에 참외가 있느니라. 그것을 따서 아버지에게 드려라!” “예? 참외가 우리 집 뒤뜰에 있다고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최만재는 꿈속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놀라서 깨어 보니 꿈이었다. 최만재는 벌떡 일어나 뒷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흰 눈이 쌓인 나뭇더미 사이에 정말로 참외 한 덩이가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최만재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참외를 따서 볼에 비비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참외를 먹고 난 후 아버지의 병환은 씻은 듯이 나았다. 기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최만재의 지극한 효심에 감동하여서 하늘이 도운 것이다.
병상에서 일어난 아버지는 최만재의 지극한 효성을 받으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최만재는 장례를 치른 후 아버지의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3년간 고기와 좋은 옷을 멀리하며 지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밤이 되면 호랑이 한 마리가 산속에서 내려와 움막을 지켜 주다가 날이 새면 산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또 어떤 날은 최만재가 장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면 호랑이가 높은 고갯마루까지 마중을 나오고는 하였다.
어느 날 밤이었다. 꿈속에 호랑이가 나타나서 “내가 지금 어느 골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 나를 구해 주시오” 하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최만재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가 보았다. 매일 밤 호랑이가 있던 자리에 호랑이가 없었다. 호랑이가 일러 준 장소로 쉬지 않고 달려갔더니 동네 사람들이 호랑이를 잡았다고 고함을 지르며 야단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짐승을 잡기 위하여 파 놓은 함정 속에 호랑이가 빠진 것이다. 최만재는 호랑이를 덥석 끌어안으며 “이 호랑이는 나의 호랑이니 잡지 마시오”라고 외쳤다. 최만재가 호랑이를 끌어안은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만재와 호랑이의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최만재의 효행도 온 고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상주의 이름난 선비들이 최만재를 관가에 천거하였고, 관가에서는 최만재의 효행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의 본보기로 삼기 위하여 효자각을 세웠다. 그 후부터 상주에 부임하는 모든 원님들도 최만재의 효자각 앞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또한 왕실마을은 효자가 난 곳이라 하여 ‘효곡(孝谷)’으로 불렸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효곡마을의 효자각」의 주요 모티프는 ‘계절에 맞지 않는 것을 구한 효자’와 ‘호랑이의 도움을 받은 효자’이다. 「효곡마을의 효자각」은 두 모티프의 설화가 합쳐져 하나의 설화로 전하여지고 있다. 전자는 효성이 지극한 자식이 부모가 먹고 싶어 하는 과일을 구한다는 내용의 효행 설화이다. ‘여름에 홍시 구한 효자’ 유형으로도 알려져 있다. 홍시 대신에 죽순, 대추, 천도복숭아, 능금 등이 나타나기도 하고 겨울에 잉어를 구하는 이야기로도 전승된다. 후자는 시묘하는 효자를 도와준 호랑이가 위기에 처하지만 효자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다는 이야기이다. 효자에게 주어진 보상과 상찬을 통하여 충효열(忠孝烈) 중에서도 으뜸인 효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