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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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化北面 壯岩里 萬歲示威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준호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9년 4월 8일 - 화북면 장암리 만세시위운동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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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19년 4월 8일 - 화북면 장암리 만세시위운동 종결 |
전개 시기/일시 | 1919년 5월 15일 - 화북면 장암리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이성범 「보안법」 위반으로 1년 3월 형 선고 |
전개 시기/일시 | 1919년 5월 15일 - 화북면 장암리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김재갑 「보안법」 위반으로 1년 3월 형 선고 |
전개 시기/일시 | 1919년 5월 15일 - 화북면 장암리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홍종흠 「보안법」 위반으로 1년 3월 형 선고 |
전개 시기/일시 | 1919년 5월 15일 - 화북면 장암리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이용회 「보안법」 위반으로 1년 형 선고 |
발생|시작 장소 | 화북면 문장산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
종결 장소 | 화북면 문장산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
성격 | 독립운동 |
관련 인물/단체 | 이성범|이용회|홍종흠|김재갑 |
[정의]
1919년 4월 8일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 대표 29명은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2시 30분경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3·1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상북도 상주에서는 3월 23일 상주 장터에서 한암회(韓岩回)의 주도로 첫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고, 이어 3월 29일에는 이안면 소암리에서, 그리고 4월 8일과 9일에는 화북면 문장산(文藏山)과 운흥리에서 각각 일어났다.
[경과]
화북면 장암리 만세시위운동(化北面 壯岩里 萬歲示威運動)은 1919년 4월 8일 일어났다. 주도자는 화북면 장암리 구장(區長)인 이성범(李聖範)과 장암리에 사는 김재갑(金在甲)·홍종흠(洪鍾欽), 입석리에 사는 이용회(李容晦) 등이었다. 이성범 등은 만세시위운동을 결의한 후, 4월 4일 면내에 동참을 권하는 권유문을 보내는 한편,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준비를 진행하였다. 또 이성범은 장암리 마을 청년들을 설득하여 참가를 이끌어 냈다.
4월 8일 오후 2시경 장암리 일신서당에 모인 이성범·김재갑·홍종흠·이용회 등은 마을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문장산[속리산 문장대]에 올라가 태극기를 세워 놓고 독립 만세를 외친 후 스스로 해산하였다. 하지만 급보를 받은 상주의 일본군 헌병 분대에 의하여 주도자 4명이 붙잡혔다.
[결과]
화북면 장암리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이성범·김재갑·홍종흠·이용회는 1919년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이성범·김재갑·홍종흠은 징역 1년 3월 형을, 이용회는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또 이성범·이용회·홍종흠 3명은 서울 경성감옥에서 옥고 생활을 하다가 1920년에 모두 풀려났다.
[의의와 평가]
화북면 장암리 만세시위운동은 문장산에 약 100여 명이 올라가 독립 만세를 외쳤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