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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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德柔 |
영어공식명칭 | Hwang Deokyu |
이칭/별칭 | 응곤(應坤),불환정(不換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순한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문신.
[가계]
황덕유(黃德柔)[1596~1659]의 본관은 장수(長水)이며, 자는 응곤(應坤), 호는 불환정(不換亭)·두곡(杜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황징(黃憕)이고, 할아버지는 황준원(黃俊元)이다. 아버지는 황뉴(黃紐)이고, 어머니는 조희철(趙希轍)의 딸 풍양 조씨(豊壤 趙氏)이다. 부인은 사헌부대사헌 전식(全湜)의 딸 옥천 전씨(沃川 全氏)이고, 아들은 황빈(黃霦)·황연(黃{雨/土+而})·황령(黃霗)이다.
[활동 사항]
황덕유는 1596년(선조 29) 상주에서 태어나 정경세(鄭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35년(인조 13) 정경세의 추천으로 동몽교관에 임명되었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성을 지켰다. 1637년 황덕유는 왕을 호종한 공이 인정되어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었고, 1638년 상의원주부가 되었다. 1639년 호조정랑을 거쳐 1640년에는 의령현감에 제수되었다.
황덕유는 의령현감으로 부임하였을 때 수해와 가뭄으로 관아 창고에 저장된 곡식이 부족하자 자신의 녹봉을 아껴 고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래도 부족하자 본가의 곡식을 실어와 진휼하였다. 또한 홍수에 대비하여 제방을 쌓고 소나무를 심어 고을 사람들의 근심을 덜어 주었다. 의령 사람들은 제방을 황공제(黃公堤)라 불렀고, 황덕유의 임기가 끝나자 거사비(去思碑)를 세워 공적을 기렸다. 황덕유는 1659년(효종 10) 면천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다가 면천 관아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