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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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坵 |
영어공식명칭 | Kwon Gu |
이칭/별칭 | 차산(次山),장재(藏齋),구학재(溝壑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석현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가계]
권구(權坵)[1611~1682]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차산(次山), 호는 장재(藏齋) 또는 구학재(溝壑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대기(權大器)이고, 할아버지는 왕자사부를 지낸 권우(權宇)이다. 아버지는 권익린(權益隣)이고, 어머니는 좌랑 안명남(安命男)의 딸 순흥 안씨(純興 安氏)이다. 부인은 장령 이익(李瀷)의 딸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고, 아들은 권이칭(權以偁)이다. 동생은 권질(權垤)·권암(權埯)·권증(權增)이다.
[활동 사항]
권구는 1611년(광해군 3)에 태어나 1651년(효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권구의 선조는 대대로 안동에서 살았으나 아버지 권익린 대에 경상도 예천의 지금곡(知琴谷)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1666년(현종 7) 권구가 상주 산양의 근암리(近巖里)[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로 이주하면서 상주 산양 지역에 안동 권씨가 정착하게 되었다.
권구는 산양에 있는 근암서원(近嵒書院)의 증축을 위하여 유생들을 대표하여 상주목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구(李榘) 등과 교유하였고, 이구가 죽자 목재 홍여하(洪汝河)와 사시(私諡)를 내리는 것에 대하여 의논하기도 하였다. 권구는 1682년(숙종 8) 사망하였다.
[묘소]
권구의 묘소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에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